"금감원 징계권 가져올 명분 만들었다" 의견도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중징계 취소 소송 1심에서 금융감독원이 패소하자 금융위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금감원의 패소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뒀음에도 소극적인 자세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금융위가 법적 리스크가 있는 예민한 사안은 반복적으로 면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EO 징계, 삼성생명 등 중징계 결정을 계속해서 미뤄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패소를 통해 금감원의 징계권을 가져올 명분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지난 27일 손 회장이 금감원의 중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의 1심 판결에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지난해 초 금감원은 우리은행장을 지냈던 손 회장과 정채봉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영업부문 겸 개인그룹 부문장)에게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부과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DLF 불완전판매가 우리은행 경영진의 내부통제 부실에서 기인했다는 판단에서다.
징계 근거가 부실한데도 무리하게 중징계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금감원이 비슷한 이유로 다른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내린 제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가 예고된 경영진은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이상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이상 문책경고) 등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금감원과는 달리 금융위는 태연한 표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패소 영향으로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의 실효성은 물론이고, 감독기구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반면 한 발짝 물러나 있던 금융위는 모든 책임에서 피해갔다”고 말했다. 그간 금융위는 금감원의 행보에 뒷짐으로 일관했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이번 판결이 나온 이후 징계 수위를 확정하겠다며 계속해서 중징계 결정을 미뤄왔다.
이에 대해 금융위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는 이번 소송의 패소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금융위에서 관여하려고 했으면 손 회장 연임도 저지하고, 법원까지 안 가게 했을 텐데 사실상 손 놓고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위도 CEO 제재에 대한 판례가 필요했음에도, 금감원을 앞세워 손 안 대고 코푼격”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번 판결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판결문에 따르면 “금융위가 피고(금감원)로 하여금 은행의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처분을 하게할 수 있더라도 구체적, 개별적인 수권행위가 전제돼야 하나 피고는 금융위로부터 이 사건 처분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은 바가 없다”고 명시했다. 금감원이 금융위로부터 처분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는 우리은행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처분 권한을 사전에 조율했다면 이 같은 주장은 제기할 수 없었을 내용이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41~43조를 보면 금감원장이 징계를 건의하거나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금융위에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게 양 기관의 해묵은 갈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이번 사태로 금감원의 징계권을 가져올 명분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