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 금융전문기자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도덕철학자인 해리 G. 프랭크퍼트의 책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의 내용 일부다.
‘올해 신생아 18세 되면 나라 빚 1억 부담’, ‘올해 태어난 아이, 18세 되면 나라 빚 1억 원 짊어진다’, 심지어 ‘태어나지 말 걸 그랬나 (중략) 1억 폭탄’까지. 지난 한주 언론사 경제면을 뜨겁게 달궜던 기사 제목들이다. 이 기사들만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머지않아 망할 것 같다.
자료 출처를 보니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다. 한경연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제목부터 ‘올해 신생아 국가채무 부담액 18세 1억 돌파, 32세 3억 돌파’다. 한경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과연 그럴까? 일단 한경연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아닌 15세부터 64세까지 생산가능인구 전망치를 기준으로 예상했다. 결국 1인당 부담해야 할 국가채무를 소위 뻥튀기한 것이다.
국가채무 중엔 사실상 상환에 문제가 없는 금융성채무가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았다. 금융성채무란 국민주택기금 등 융자금이나 외국환평형기금 등 외화자산을 말한다. 즉,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채무와 달리 대응자산이나 채권이 있어 이를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자체상환이 가능한 채무다. 금융성채무는 2020년 기준 국가채무의 40%(39.4%) 수준을 기록 중이다. 경제연구원이라는 전문가 집단이 이를 모를 리 없을 터다.
국가가 빚을 내기 위해 발행한 국고채 중 외국인 투자비중은 2020년 기준 16.7% 수준에 불과하다. 즉, 정부의 빚인 국채는 대부분 국민이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한경연 논리대로라면 아빠가 엄마한테 진 빚을 아들과 딸이 엄마한테 갚아야 한다. 설령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손 치더라도 아들과 딸이 아빠한테 받을 채권은 왜 계산에 넣지 않는가.
한경연은 또 국가채무가 2019년 723조 원, 2020년 847조 원을 기록 중이며, 올해 964조 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인 국가채무비율도 같은 기간 37.7%에서 44.0%에 이어 47.2%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수치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국제비교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2019년 39.2%에서 2020년 44.7%로 5.5%포인트 늘었다. 이는 국제비교가 가능한 28개국 중 증가폭 기준 23위에 그친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29.1%p), 일본(+21.9%p), 독일(+11.7%p)은 물론이거니와 그리스(+30.6%p), 이탈리아(+28.3%p), 호주(+18.7%p), 터키(+7.4%p)와 견줘서도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특수성에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 아니라, 되레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허리띠를 졸라맨 정부 덕(?)에 가계 고충만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말 GDP 대비 가계부채는 전년말보다 8.6%포인트 늘어난 103.8%를 기록했다. 비교 가능한 43개국 중 5번째로 크게 증가한 것이며, 사상 처음으로 가계빚이 경제규모를 넘어선 것이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가계가 또 다른 경제주체인 정부와 기업을 도운 바 있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나 임시직 등 가계를 중심으로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타령만 하는 게 맞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도 최근엔 현대화폐이론(MMT)이 주목을 받고 있다. MMT는 정부 재정을 일반 가정이 가계부를 쓰듯 운용하는 방식에서 탈피하는 소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경연을 비롯한 기존 전통경제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치권, 정부, 언론도 사고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무언가 들키지 않고 교묘히 처리하려는 게으른 장인에서 탈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