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장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국가의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상원 예산위원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에 탄소 집약적 수입품에 대한 오염수수료(Polluter Fee) 부과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 법안의 대표적 지지자인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에 따르면, 오염수수료 적용 대상에는 알루미늄, 시멘트, 철강, 천연가스, 석유 및 석탄을 포함하는 무역 경쟁에 노출된 탄소 집약적 제품이 포함된다. 향후 다양한 유형의 제품에 대해 탄소 배출 규모를 결정하는 프로세스가 개선되면 적용 대상 수입품 목록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수입품에 대한 탄소국경세 부과는 미국의 무역 파트너 입장에서 차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국인 중국과의 무역 긴장을 가중시킬 수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세 도입 입법을 공식화하는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EU는 공격적인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나라들과 무역 및 경제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야심찬 기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의 탄소감축입법안(Fit for 55)의 핵심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2026년부터 시행되며 철강, 시멘트, 비료, 전기제품 등의 분야는 2023년부터 우선 적용된다. 그러나, EU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는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WTO 규칙은 EU 기업보다 비EU 기업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EU가 CBAM을 어떻게 설계하든 사실상 차별적 조치로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은 WTO 회원국들과 협력하여 합법적인 운영원칙과 제도에 기반한 다자간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논쟁적인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다자간 협력은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탄소국경세 도입의 잠재적인 영향 중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 추가적인 관세로 간주되는지 여부이다. 중국은 탄소국경세가 본질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무역 부문으로 확대하기 위한 일방적인 관세 조치이고, WTO 규범을 위반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석유, 석탄, 철강, 알루미늄과 같은 탄소 집약적 제품의 EU 최대 공급 국가인 러시아도 도입에 부정적이다. 탄소국경세 논의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시멘트 등과 같은 에너지 집약적인 우리 산업에 고통을 줄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탄소국경세 시행에 동참하면, 반등하고 있는 우리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EU가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우리 수출이 매년 1.1%포인트(p) 또는 71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움직임은 분명히 선의에 의한 것이다. 이 특별한 문제에서 인류가 함께 모여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일의 중요성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우선해야 한다. 이러한 대처 과정의 일환으로 도입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금 부과는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가지고 있는 많은 정책들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이 새로운 세금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동일한 가격을 기후변화에 지불하도록 강요한다는 의미에서 불공평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제조업체가 녹색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비용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도 불공평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공정성은 없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존재한다. 결국 해결책은 일방의 논리와 주장이 상대방의 그것들을 압도할 만큼 설득력이 있는지와 그들을 따라 행동하도록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