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ㆍ민주주의 약해질 때 가능성 커
시간 걸리지만 결국 미국 국제사회 신뢰 회복할 것 전망도
여객기 두 대의 충돌로 무너져 내린 미국 텍사스주 세계무역센터 터에 자리 잡은 9·11 기념 박물관에 찾은 한 여성은 전시장을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1년 알카에다가 세계 최강대국 번영의 상징을 가차 없이 파괴했던 9·11 테러 이후 20년이 흘렀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돼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에 이른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탈레반의 복권을 뒤로 한 채 올해 8월 30일(현지시간) 미군이 철수하는 쓰라린 막을 내렸다.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아프간 정세는 테러 이후 ‘지난 20년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큰 의문점을 세계에 남겼으며 향후 20년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최근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3명의 논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빌 에모트 영국 이코노미스트 전 편집장은 9ㆍ11로 시작된 전쟁을 ‘승자 부재’로 판단했다. 그는 “알카에다는 패배했다. 테러의 주모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은 살해당했다. 하지만 미국도 막대한 자금과 유혈이 수반되는 전쟁을 겪었으며, 국제적 역할이 약화했다”고 진단했다.
또한 논객들은 향후 20년 동안의 최대 우려 요인으로 미·중 관계를 들었다.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제2차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냉전을 넘어 ‘열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대만이나 어딘가에서 국소적인 전투가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에모트 전 편집장도 “최악의 가능성은 초강대국에 의한 실제 전쟁”이라며 “미국이나 민주주의가 약해지고 있을 때 그것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제정치학자이자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회장인 이언 브레머는 “앞으로의 세계는 훨씬 위험해진다. 경찰관의 부재에 가세해 공통의 기준이나 신뢰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이 현재 민주주의 위기와 세계 리더로서의 위상 저하를 극복하고 중기적으로 강건함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분명 존재한다.
에모트 전 편집장은 “미국은 오랜 회복 훈련을 거쳐 다시 일어날 것”이라며 지난 1975년 베트남전 패배와 직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잃었던 국제사회의 신뢰를 15년 가까이 걸리긴 했지만 다시 회복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퍼거슨 역시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은 크게 부상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은 오류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수에 의한 권력 집중과 대규모 감시를 통해 통치하는 중국의 통치 모델은 유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미국이 분열과 분단을 완화하고 치유해 최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닛케이는 진단했다. 브레머 회장은 “미국에는 중산층 신뢰 회복을 위한 격차 개선 정책이, 동맹국에는 감염병이나 기후변화 등 주요 현안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촉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