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우정펀드를 아시나요

입력 2021-09-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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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숙 사단법인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2014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서울 목동에 ‘재기지원센터’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해줄 수 있는, 실제 재창업을 하고 있는 선배 기업가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간 내가 겪은 경험이 새롭게 재기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원해서 지원했고, 멘토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정말 좋은 시도였다. 나는 전심을 다해 멘토링을 했다.

비단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근무였지만, 자신의 날을 잘 지키지 않거나 쉽게 대응한 기업가 멘토를 2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다. 더욱이 내가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의 멘토위원장을 맡아서 관리하던 1년 동안은 업무 시작 시간부터 잘 지키길 강조했고,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자신의 회사에서보다 더 철저히 멘토링 업무에 임하는 걸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재기지원센터에서 재창업 자금까지 관장하게 되면서 자금과 관련된 정보들이 외부 유출될 것을 우려한 중진공 본사로부터 기업가 멘토단 해체를 요청받았고, 그 후 다시는 이 선배 기업가들의 멘토링이 부활하지 못한 걸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말 힘들게 가시밭길 같은 사업가의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이라 자신의 경험이 후배 사업가에게 도움이 되길 모두가 진심으로 갈망했기 때문이다. 우리 협회 차원에서 기업가 전문 멘토단을 발족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멘토링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지만 2014년 전후만 해도 드물었고, 아직도 재도전 기업가들이 허심탄회하게 자문을 할 만한 사람과 기회는 많이 부족하다. 처음 대면하는 나에게, 부인과 직원들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라며 회사가 무너지기 직전의 그 처절한 심경을 고백하는 기업가들을 만나면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재기지원센터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과 함께 하는 공적 멘토링 시간이 끝난 후면, 따로 만나서 공무원 앞에선 하지 못한 상담을 밀도 있게 더 나누고 싶다는 분들의 전화가 계속 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따로 만나는 건 지침에 어긋나는 것으로만 생각해 전화로만 최대한 진심어린 상담을 하곤 했는데, 그런 기업가들의 사례들이 자료로 남아 ‘그 후로도 후속 연계가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재창업 DB 구축에 대한 필요성을 법안으로 제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갑자기 회사가 위기에 처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망설이던 한 기업가가 가장 생각난다. 대출금과 카드가 연체되기 시작했는데, 그 분은 지금의 위기를 빚을 더 내서라도 버티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계획했던 계약 성사와 자금 회전이 가능할 것만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런 순간의 갈등에 처한 적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다. “넘어질 때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으려면 지금이 그 적기의 타이밍이니 서슴없이 폐업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라”고.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 듯 그 분의 얼굴은 굳어졌고 같이 상담을 하던 회계사도 거들었다. 지금 폐업하면 업계에서 앞으로 어떻게 신뢰를 유지해 다음에 사업을 다시 할 수 있겠냐며 반대했다. 나는 그 회계사를 돌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사업을 해본 적도 없고, 사업의 위기를 겪으며 절체절명의 판단의 갈림길에 서 본 적도 없었던 그 회계사는 자신의 이론의 함정을 절대 알 수 없을 테니까.

업계의 신망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던, 참으로 진실되게 사업을 영위해 왔을 것 같은 그 분는 안심한 듯 돌아갔지만 사업은 냉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는 이제 깨닫고 있을까. 이미 연체되기 시작한 금융권의 채권이 3개월 후 도래하면 채무불이행자로 바로 등록되고 모든 금융 거래가 스톱되고, 세금과 급여가 더 문제가 되기 전에 정리를 시작할 타임이라는 걸 냉정히 판단해야 하는 게 사업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다 잃고 다시 재기해 문제 된 채권을 갚을 길을 찾지도 못한 채 지옥 같은 어둠 속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그와 다시 연락이 닿는다면 아마 나처럼 이제는 후배 재창업자들에게 실패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고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그의 절실한 깨달음이 왜 다른 후배 재창업자에게 전달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재창업 담당 기관에서 수없이 이와 관련된 연구용역이 나왔고 그 연구에도 분명히 적시돼 있는 게, 재창업자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다른 실패한 기업가들의 실패 사유에 대한 공유였다. 재도전 정책의 핵심은 재도전 기업가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필요한 협업, 네트워크 시스템인데 재창업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창업진흥원에 이러한 네트워크와 관련된 예산이 없어 단발 프로그램 형태로만 겨우 진행되고 있는 게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우정펀드라는 게 있다. 중진공 재창업자금의 원금을 상환하는 데 문제가 발생한 회원사를 대상으로 다른 회원사들이 십시일반 갹출하여 그 원금을 대신 갚아준다. 원금 지원을 받은 회원사가 그 원금을 상환하게 되면 그 돈은 다시 다른 회원사의 긴급 자금 지원에 쓰이게 된다. 그 돈을 못 갚을 경우에도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지만, 3년 동안 10호가 발행된 그 우정펀드를 상환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우정펀드만큼은 상환했으며, 또 아무리 어려워도 다른 회원사들이 위기에 처한 걸 나몰라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코로나19라는 이 큰 위기를 버틸 가장 중요한 정신도 어쩜 그런 우정의 연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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