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취임…관리 종사자 보호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공포 '성과'
이선미<사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회장은 주택관리사의 역할에 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아파트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익숙한 곳이지만 정작 아파트를 관리하는 주택관리사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주택관리사는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2016년 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 조건(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또는 150가구 이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공동주택)을 갖춘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은 반드시 주택관리사가 맡게 돼 있다.
또 각 지자체에선 주택관리사가 공동주택 담당 공무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총 1만8000명의 주택관리사가 민간과 공공분야에서 공동주택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투데이는 서울 금천구 협회 사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나 주택관리사의 현황과 당면 과제, 향후 협회 활동계획 등을 들었다.
이 회장은 1월부터 제9대 대한주택관리사협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 회장 취임 이후 첫 결실도 얻었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고(故) 이경숙 주택관리사 피살사건 이후 관리 종사자 보호를 위한 관련법 제정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난달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공포라는 성과를 거뒀다.
인천 모 아파트 관리소장을 맡은 고 이경숙 주택관리사는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이 모 씨에게 살해됐다. 이 씨는 법적으로 관리사무소장 명의의 인감으로 만들어야 하는 관리비 통장을 본인 인감으로 바꾸려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이 소장이 이를 수차례 제지했고 이 씨는 이에 앙심을 품고 이 소장을 살해했다.
이 회장은 “이경숙 주택관리사 피살 사건은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의 업무 환경이 극도로 위협받는 초유의 사건이었다”며 “재발 방지가 급선무인 만큼 가해자 엄벌과 제도 개선을 위한 관련법 제정을 위해 협회와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고 했다.
지난달 공포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에는 관리사무소장도 ‘갑(甲)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기틀이 마련됐다. 해당 법안은 아파트 입주민이나 입주자 대표회의가 관리사무소장에게 위법한 지시 및 명령, 부당간섭, 폭행‧협박 등을 행사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회장은 주택관리사 권익 보호를 위한 첫발을 내딛은 만큼 임기 내 추가 법안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법조계와 학계는 법적 처벌 규정이 공동주택관리법에 반영되지 않는 한 공동주택 관련 갑질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며 “운수업이나 의료, 철도 종사자를 관련 법률로 보호하는 것처럼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에 대해서도 공동주택관리 업무를 방해할 경우 형법 이외에 별도로 가중처벌할 수 있는 특례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이 갑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안정한 현행 주택관리사 고용 체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관리사무소장은 전체의 80% 이상이 위탁관리회사에 의해 파견 등 간접 고용된 관리 종사자”라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회사를 선정하고, 회사가 다시 계약직 관리소장을 고용하는 구조이므로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은 입주자대표회의나 입주민의 부동한 요구나 갑질을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어 “한 달이나 석 달, 반년 등 1년 미만 단기 계약직과 같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근로 계약이 이어지지만 갑질 행위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관리 종사자들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일하고 결국 근로 의욕까지 떨어져 관리 서비스의 질도 나빠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관리사를 포함한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의 임기 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표준 수탁 관리 계약서에 2년에서 3년의 위탁관리 계약 기간 동안 임기를 보장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신분 보장을 통한 업무의 안정성과 연속성 확보는 곧 입주민 주거복지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법적 안전망 구축과 함께 국민 인식 변화도 촉구했다. 이 회장은 “공동주택 내 관리사무소의 공적 기능을 확대하고 다양한 기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관리사무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시민 인식을 바꾸는 활동도 필요하다”며 “협회는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을 위한 관리 현장의 갑질 방지, 근무환경 개선, 권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서 펼칠 것”이라고 했다.
2019년 기준 공동주택은 전체 주택 1813만 가구 중 1400만 가구(77%)를 차지할 한국의 대표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주택관리사는 전국 1만7400개 아파트 단지에 파견돼 모든 행정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150가구 미만 공동주택과 오피스텔, 노인주택 등 공동주택관리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공동주택이 많다.
이에 이 회장은 “공동주택 관리법 밖에 있는 주택들, 특히 수백 실 규모 오피스텔은 그야말로 눈먼 돈이 오가는 곳”이라며 “공동주택 관리법 적용을 받지 않는 주택에 거주하는 국민의 주거 복지와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의무관리 대상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사무소에 각종 위법행위를 강요하거나 업무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토록 하는 법안 개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하면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자의적 권한 행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관리 현장에서 일어나는 갑질 문제 등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협회는 관련 공동주택관리법 개정과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기준 개정을 통해 입주자대표회의를 사용자로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회장은 “공동주택 내 모든 민원은 관리사무소로 모이는데 사실 문제 해결은 관리소의 강제력보다는 입주민 간 소통과 대화로 풀어야 할 상황이 더 많다”며 “결국 소통을 활성화시키려면 커뮤니티 조성을 통해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관리소 자체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관리 주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정부의 관련 예산 지원도 함께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택관리사 역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공동주택 관리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