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선 자강론 부상 속 ‘전략적 자율성’ 강조…동맹국 달래기 나선 미국
미국과 영국, 호주 3개국이 발족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한 깜짝 안보 파트너십 ‘오커스(AUKUS)’를 둘러싸고 견제 대상인 중국은 물론, 동맹국인 유럽연합(EU)과 프랑스까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는 호주가 자국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의 잠수함 계약을 파기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호주가 3자 안보동맹 발족과 함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로 하면서, 지난 2016년 체결한 560억 유로(약 77조 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최대 12척 공급 계약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프랑스 앵포 라디오에 출연, 호주의 계약 파기에 대해 “제대로 발등이 찍혔다. 우리는 호주와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데, 이건 배신행위다. 매우 분노를 느낀다”고 불쾌한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해서도 “이처럼 잔인하고, 일방적이며, 예측할 수 없었던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곤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3국의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로 돌연 알려졌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매우 화가 나고 씁쓸하다. 이건 동맹국 간에 일어날 일은 아니다”고 혹평했다.
프랑스는 영미권 기밀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잠수함 기술을 영국과만 공유해 왔다.
유럽 역시 오커스에 대한 통지를 받지 못했다면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 EU는 이날 인도·태평양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자체 전략을 공개했지만, 이는 오커스에 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최근 바이든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강행과 맞물리면서 급부상한 ‘EU 자강론’과 함께 소외됐다는 인상을 받아 미국과의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지점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우리는 다른 곳과 같이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U의 한 고위 관리는 CNN방송에 “그것은 중국에 대항해 동맹을 형성하고 있는 매우 호전적인 영어권 국가들”이라며 “이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앞장섰던 그 국가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결과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을 다루는 EU의 전략은 한 가지 주요한 면에서 미국과 다르다고 CNN방송은 분석했다. EU는 중국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중국을 경제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로 보고 있다.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대중국 포위망 전략을 구사하던 미국은 이들의 이러한 반응에 난감한 상황이 됐다. 이를 의식한 듯 프랑스를 달래려는 듯한 입장도 내놨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우리는 인도·태평양에서 유럽 나라들의 중요한 역할을 환영한다”며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는 필수적인 파트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전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유럽 국가 및 프랑스의 역할과 존재감을 강조하면서 “미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중요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