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철학자에게 행복을 묻다

입력 2021-09-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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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당신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판단을 하려면 먼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욕망하는 것, 갈망하는 것을 다 손에 쥐는 게 행복인가? 일상의 안녕들이 지속하는 것, 가족과 화목하게 사는 것, 건강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마도 그런 것들이 안락한 삶의 조건이 될 수는 있을 테지만 행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세계는 전쟁과 폭력, 가난과 기아 따위로 얼룩져 있다. 도시에서는 날마다 갖가지 범죄들이 일어나며 우리의 안녕과 생명을 위협한다. 세계 도처에서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 재해가 발생하고, 대기 오염과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의 미래는 암담하다. 또한 인간은 늙고 병들며, 기력은 쇠잔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씩 떠나간다. 그런 조건에서 저 혼자만 희희낙락하며 살 수는 없다. 행복의 조건과 불행의 조건은 그 총량을 비교해 보면 누구에게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누구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다른 누구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행복은 개별자의 현실이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정신의학의 영역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평온한 가을 아침이다. 어젯밤 공중에 떠 있던 달은 사라졌다. 간밤에는 잠을 잘 잤다. 편두통은 없고, 팔과 다리는 멀쩡하다. 아침식사는 조촐하게 마쳤다. 지금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 아래서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잠들고,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내가 보는 풍경 속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나무는 잎이 무성하다. 햇빛이 그 나무를 축복하고 있듯이 감싼다. 햇빛이 투과하는 나뭇잎은 아주 밝은 연두색이다. 나뭇잎은 투명하고 환한 빛으로 반짝인다. 내 안에 있는 근심의 부피가 그리 크지 않아 견딜 만할 때 나는 낙관적이 되어 세상은 대체로 살 만하다고 느낀다.

눈[雪]은 저 멀리 있고, 겨울 한파가 닥치려면 멀었다. 겨울이 온다 해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내게는 추위를 피할 집이 있고, 두툼한 스웨터와 발을 감싸는 보온양말도 몇 켤레나 있다. 지금 이 찰나, 나는 암석과 바다와 숲이 있는 이 지구에 살아 있다. 어떤 비관도 난폭함도 나를 삼킬 수 없음에 안도한다. 나는 안전하고 낙관적이며 편안하다. 이것이 내 곁에는 잠든 고양이가 있고, 환한 햇빛에 물든 나무가 있는 가을 아침의 기분이다. 나는 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떠도는 난민들이 있고, “지구는 피살자들의 스크린이다”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음을!

오랫동안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시와 철학에 빠진 것도 그 물음과 이어지는 바가 있다. 나는 나름대로 소박한 대답을 얻었다. 인간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존재다. 윌 듀란트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물리학자에게 아이는 분자, 원자, 전자, 양자의 집합일 뿐이다. 생리학자에게 아이는 근육, 뼈, 신경의 불안정한 결합체다. 의사에게 아이는 붉게 달아오른 질병과 통증의 덩어리다. 심리학자에게는 유전과 환경의 무력한 수신자이며 허기와 사랑으로 통제 가능한 조건 반응의 집합체다. 이 희한한 유기체가 갖게 될 거의 모든 생각은 망상일 것이며 거의 모든 인식은 편견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 내가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이유도 안다.

나는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읽고, 집과 가까운 동네를 산책하는 것을 즐기며, 단골로 다니는 동네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아도니스 시집에서 “달[月]은 창밖으로 내던져지는 껍질이고, 태양은 전기 오렌지다”와 같은 시구를 읽을 때 놀란다. 가끔 위원회에서 소집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노동을 해서 생활에 필요한 만큼 돈을 번다. 나는 세금과 국민의료보험료와 기타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나는 실내에서 남천나무를 비롯한 식물 몇 그루를 기르고, 타인의 안녕과 기쁨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분의 힘이 있다. 나는 기후변화를 걱정하고, 전 세계를 덮친 바이러스 전염병을 걱정하고, 갑자기 치솟은 집값이 폭락할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혈압은 정상이고, 식후 혈당도 안정적이다.

니체라는 철학자의 책을 꽤 여러 달 동안 집중해서 읽고 있다. 나는 니체가 말하는 “그대의 사상과 감수성 뒤에 강력한 지배자가 있다. 그대는 모르는 그 현자의 이름은 ‘본래의 나’다. 그대의 육체 안에 그가 살고 있다. 그대의 육체가 바로 그 사람이다”와 같은 생각에 대체로 동의한다. 나는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사유의 연장선에서 “실제로 정신이 가장 닮은 것은 위(胃)다”라는 니체가 쓴 구절을 읽을 때 놀라고 감탄한다.

나, 혹은 자아라는 것도 신체가 보여주는 실물로서의 구체성과 확실성에 견준다면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 나, 유일성의 존재 근거라고 받아들여지는 이것은 일종의 문법적 가설일 뿐이다. 과연 자아는 내 개별적 존재의 토대인가? 그것은 실상 잡다한 작용들의 집합이 아닐까?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에 본래적이며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이 느끼고, 바라고, 생각했던 것의 창백한 반영일 뿐이다.” 니체라는 철학자에 따르면 삶의 생성적 주체는 자아가 아니라 신체다! ‘신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학적 물음이다. 질 들뢰즈는 니체 철학을 논의하면서 그것을 “힘의 영역, 다수의 힘들이 서로 투쟁하는, 영양을 제공하는 환경”, “환원될 수 없는 다수의 힘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다수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신체는 삶에의 의지, 그리고 활동의 근거이자 삶의 환경이라는 점에서 나는 질 들뢰즈에 동의한다. 신체는 항상 ‘현실적인 것’(생물학적, 사회적, 정치적인 것들)을 생산해낸다. 그것 없이는 어떤 삶도 불가능하다. 차라리 삶은 모든 힘의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니체는 몸의 철학자다. 니체는 온몸이 병으로 뒤덮인 환자로 살면서 몸이 생의 주체라는 인식을 굳히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교한 사유를 제 철학의 몸통으로 삼게 되었다. 신체는 이성이나 영혼에 부속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몸은 대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이다. 형제여, 네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작은 이성, 그것 또한 너의 신체의 도구, 이를테면 너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놀잇감에 불과하다.” 니체는 서구 사상사에서 이성의 부속물로 전락한 신체를 복권시키며, 그 의미를 새롭게 새긴다. 신체가 이성의 도구가 아니라 이성이 신체의 도구라고!

나는 신체, 몸 그 자체다. 우리는 신체에 굽이치는 힘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 있음의 감각은 생생해진다. 우리는 신체로써 느낌과 감정들, 미묘하게 변화하는 기분을 감지한다. 우리의 행복은 신체에 여분의 힘이 있을 때다. 숨 쉬고, 먹고, 잠자고, 움직일 때 우리 신체의 필요보다 조금 더 넘치는 힘, 여분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 여분의 힘을 활력의 뿌리로 삼으며 그 상태를 건강이라고 부른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 힘의 느낌, 힘에의 의지, 인간 안에서 힘 그 자체를 증대시키는 모든 것.” 그리고 이어서 쓴다. “나쁜 것은 무엇인가? ― 약함에서 유래하는 모든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갈라지는 것은 힘의 느낌과 증대, 그 차이에서 비롯한다. 자기 안의 힘이 증대한다는 느낌은 좋은 삶의 근거다. 반면 약함, 기력의 쇠진은 나쁜 삶에 빨려 들어가는 조건이다. 약해지는 것은 힘의 고갈이고 이것은 곧 죽음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니체는 자기 안에 힘이 증가한다는 느낌 속에서 행복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 힘이 증가된다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 니체는 신체를 경멸하여 깔보는 자들을 뒤집는다. 오늘 아침 내 신체의 건강함이 행복의 기초적 토대임을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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