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제3지대 심층 분석
역대 대통령 선거는 지난 19대 때를 제외하면 거대 양당의 후보가 표를 절반씩 나눠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18대 대선 때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1.6%,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48.0%로 팽팽하게 맞섰다. 16대 대선 때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48.9%,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46.6%로 거의 절반씩 나눠 가졌다. 14대와 15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양당이 팽팽하게 맞설수록 중도층의 표심은 중요하다. 중도층의 표심이 어디로 가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8대 대선 때 범진보에 속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후보직을 내려놨던 이유도 문재인 후보의 표를 뻇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번 대선 역시 거대 양당 구도로 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도층의 비율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P)) 결과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말에 '무당층'이나 '없음'으로 답한 사람의 비율이 41%에 달했다.
문제는 이 중도층 사이에선 "거대 양당에 찍을 후보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장동 특혜 논란에, 야권 유력 주자인 윤석열 예비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뒤를 잇는 홍준표 예비후보도 잇따른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일 발표된 KBS의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선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10.4%, 잘 모르겠다 혹은 무응답이 4.7%를 기록했다. 15%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한 것이다.
이에 거대 양당이 아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정의당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남은 상황이다. 안 대표는 당내 대선기획단 출범 후에 공식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부총리는 최근 출마 선언 후 지지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정의당은 다음 달 12일 후보를 확정한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금태섭 전 의원의 선후포럼이나 채이배·김성식·김관영 전 의원이 활동하는 한국공공정책전략연구소 등이 3지대에서 미칠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이투데이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조용히 기회를 노리는 3지대를 집중적으로 분석해봤다.
거대 양당에 속하지 않은 대선 주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안 대표다. 안 대표는 과거에도 3지대에서 끊임없이 역할 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가장 최근인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안 대표는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안 대표는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현실적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국민의힘과 합당이 결렬된 상황에서 안 대표가 대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당 자체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 대표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당은 사실상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대표는 최근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며 당의 대선기획단이 꾸려지는 대로 출마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24일 오후에는 한국노총 대구광역시지역본부를 찾아 "저희가 대선 기획단을 만들기로 했다"며 "당 대표이지만 당원이기 때문에 대선기획단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려 한다"고 얘기했다.
문제는 국민의당이 대선을 위한 준비를 이제야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과 합당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기도 했고, 대선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촉박한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대표의 출마가) 기정사실화지만 아무 준비가 안 돼 있다"며 "물밑에서 여러 가지 조율 등 작업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만간 뭔가 전열이 가다듬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거대 양당 구도 속에서도 본인의 강점인 '중도 확장력'을 통해 대선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중도층이 지금 어느 때보다 많다"며 "중도층이 제일 관심을 두는 것은 정권교체, 정권 유지 이런 부분보다 과연 우리나라를 조금 더 좋은 대한민국으로 만들 수 있는가가 선택 기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온전함을 가진 리더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며 "그런 점을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화두로 만들자는 것이 제 목표"라고 부연했다.
정의당은 6일부터 당내 경선에 돌입했다. 앞서 두 차례 대선에 출마했던 심상정 전 대표는 물론 이정미 전 대표와 김윤기 전 부대표, 황순식 경기도당위원장 등 4명이 후보로 나섰다.
정의당은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며 12일부터 PR 경연과 TV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당원들에게는 후보의 이름을 제외하고 블라인드로 정의당 대선 후보 이미지 조사를 하는 등 색다른 방식을 도입했다. 정책 블라인드 테스트도 진행했고 이날 오후에는 정책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문제는 당의 지지율이 낮은 만큼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행 사태로 물러난 뒤 정의당은 그야말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당 지지율도 20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P)에 따르면 2.6%로 저조했다.
정의당은 그래도 희망을 품고 대선 정국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후보가 확정되고 진보 정당다운 공약을 내세우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선 정국을 넘어 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더 길게 내다보고 정책과 공약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심 전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심 전 대표는 KSOI가 20일 발표한 적합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2.1%로 전체 8위를 차지했다. 5위인 유승민 국민의힘 후보와 0.8%P 차다. 만약 민주당 후보가 확정된다면 해당 표심 중 일부가 심 전 대표 등 정의당 대선 후보에게 갈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김 전 부총리는 기존 정치권과 다른 행보를 가겠다며 야심 차게 제3지대행을 택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인지도가 오르지 않고 지지율 역시 저조한 상황이다. 친분이 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합류했고 후원금도 하루 만에 12억 원을 모으는 등 기대감을 높였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KSOI 조사에서 김 전 부총리는 전체 후보 조사에선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다만 범 보수권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홍준표, 윤석열, 유승민 후보와 안 전 대표에 이은 5위로 2.8%를 얻었다. KBS 조사에선 0.4%를 얻는 데에 그치며 12위를 기록했다.
김 전 부총리 측은 지지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슈메이킹'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네거티브가 아닌 색다른 공약, 이색 정책 등으로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취지다
김 전 부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지지율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며 "어찌 보면 시끄럽게 뉴스화하고 이슈 파이팅을 하지는 않지만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샤이 진보나 샤이 보수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층의 면면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여야 후보에 대한 평가가 가장 부정적으로 나타났다"며 "소리 없이 (기회가) 찾아온다는 믿음을 (김 전 부총리가) 갖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 전 부총리 측은 후보가 추려지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이를 위해 28일에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경장포럼을 출범하고 새로운 정책을 준비 중이다. 핵심 관계자는 "새로운 아젠다 하나를 이슈 파이팅할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를 하고 있다"며 "그게 만약에 링 위로 떠오른다면 순식간에 지지로 이어지기보단, 제일 걱정하는 인지도를 순식간에 올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안 대표와 정의당, 김 전 부총리 외에도 3지대에 남은 정치권 인사들이 있다. 민주당에서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금태섭 전 의원과 바른미래당 출신의 김관영, 김성식, 채이배 전 의원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치 세력을 구축하며 대선 정국을 준비하고 있다. 직접 후보로 뛰진 않지만, 정책이나 비전 등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도다.
금 전 의원은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경애 변호사와 함께 선거 이후를 생각하는 모임인 '선후포럼(SF포럼)'을 발족했다. 현재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검증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금 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후보자들을 검증, 평가하고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견인하고 그런 단계"라며 "그 이후는 그 이후에 가서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어 "(선후포럼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방향으로)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출신 세 의원은 지난 2월 한국공공정책전략연구소(KIPPS)를 열고 코로나19로 인한 대전환 시대에 공공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후 공론화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후보들을 초대해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채 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계속 정책 공론화 작업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며 "확정된 건 아닌데 연구소가 주최해서 대선 후보들과 정책에 대해 같이 얘기하는 그런 자리를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정당의) 경선이 끝나면 최종 후보들을 대상으로 하자고 지금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IPPS는 이런 활동을 통해 캠프가 자체적으로 준비한 공약은 물론 연구소에서 제시한 공공정책을 두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채 전 의원은 "그쪽에서 낸 공약이나 우리가 낸 정책이 잘 섞여져서 더 발전돼서 좋은 거로 갈 수 있으니 그런 걸 시도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3지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선 정국에서 거대 양당 구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 전 대표나 김 전 부총리, 정의당 후보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10%P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표마저 여야로 갈리게 된다면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그만 차이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김 전 부총리와 정의당 표를 합쳐 민주당 표를 잠식한다고 계산하면 안 대표가 (야권에서) 그 정도를 받을 거니 거의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은 상황이다. 김 전 부총리나 안 대표가 표를 더 끌어올 때는 타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도 원내정당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이 교수는 "아직 선거가 5개월~6개월 남은 상황이고 1~2개월 남았을 때 상황은 또 다를 수 있다"며 "그 정도는 이해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