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가 '리필 스테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행 화장품법이 가로막았던 리필 매장 운영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해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떠오른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에 발맞춰 업계의 리필 매장 운영이 향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필요한 만큼 화장품을 충전하는 리필 매장의 운영이 기존 대비 자유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지원센터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제관리사 없는 화장품 리필 판매장'을 허용키로 했다.
앞으로 소비자는 리필 매장에서 리필용기에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담고,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잰 뒤 제조번호 등 제품 정보를 쓰인 라벨이 부착된 제품을 최종 결제한다. 구매 가능 대상 화장품은 샴푸, 린스, 액체비누, 바디클렌저 등 4종이다.
과거에는 화장품법의 맞춤형 화장품 관련 조항에 따라 매장별로 반드시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 했다. 리필 스테이션에서 소비자가 각자 필요한 만큼 제품을 충전하는 개념이 소분, 맞춤형 정의에 부합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문화센터 강좌 등에서 맞춤형 비누, 화장품 제조 강좌에서 불거진 위생 관련 문제를 규제하기 위한 조항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플라스틱 용기 배출 문제가 대두하면서 리필 매장 운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뷰티업계의 리필 매장 운영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모레퍼시픽은 올 초 대한화장품협회와 함께 '2030 화장품 플라스틱 이니셔티브 선언'을 통해 플라스틱의 소비를 줄이고 소비자들에 재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등의 'Less Plastic' 전략을 이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업계 최초로 샴푸와 바디워시 제품의 내용물만을 소분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을 도입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실증 특례로 서울 소재 이니스프리 3개 매장에 대해 리필매장을 시범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이번 규제 샌드박스 승인으로 조제관리사 없이 매장에서 고객이 직접 제품을 리필하고 소분할 수 있게 됐다"라면서 "리필매장 운영을 통해 브랜드가 추진 중인 친환경 캠페인 및 마케팅에 대한 고객 참여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화장품 용기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 역시 샴푸와 바디워시 제품의 내용물을 리필 용기에 나눠 판매하는 ‘빌려쓰는지구 리필 스테이션’을 이마트 죽전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재구매율 1위 탈모 샴푸 ‘닥터그루트’ 와 프리미엄 바디워시 ‘벨먼’ 등이 있다.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친환경 가치 소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ESG 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계획이라는 게 LG생활건강 측 설명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두번째 리필 매장을 열었다. LG생활건강의 헤어·바디·스킨 및 오랄케어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을 선별 및 구성해 선보인 편집 매장이다. ‘리필 스테이션’과 ‘체험존’으로 구성됐다.
아로마티카는 지난해 8월부터 자사 공병 수거 캠페인을 진행해오면서 올해 7~8월에는 ‘용기내고 리필해’ 캠페인을 통해 자사 공병뿐 아니라 투명 생수병을 가져오면 아로마티카 제품을 리필해주거나 리필팩을 제공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연초 백화점 업계 최초로 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에코스토어 리필 스테이션은 뉴질랜드 친환경 세제 브랜드인 ‘에코 스토어’와 함께 론칭했다. 전용 리필 용기에 친환경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구매·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