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풍력 발전 차질에 천연가스 가격 '천정부지'
탈탄소·탈석탄 정책, 물가 상승 부추겨
영국, 원전으로 유턴 고려
중국과 유럽 등 곳곳에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에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중국과 유럽은 최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탈(脫)탄소 정책 추진으로 전력난이 일어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난방용 석탄 선물 가격은 지난달 4배 넘게 폭등했다. 수요는 늘어가는 데 정부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공급을 제한한 영향이다.
또 중국 정부는 전력 소비 단속에도 나섰다. 최근 일부 지역 주민에게 에어컨이나 난방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알루미늄 업계 등은 정부의 전기 사용 제한 압박에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전력 소비 단속은 수요 증가, 석탄과 가스 가격 급등,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추진되고 있다”면서 “전력을 둘러싼 각종 압박은 중국 경제에 헝다그룹 사태보다 더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유럽도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럽 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는 지난달 말 메카와트시(㎿h)당 50유로(약 6만9000원)를 돌파했다. 2020년 말 가격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오른 수치다. 이달에도 추가로 40% 올라 한때 70유로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폭등 이면에도 그린플레이션이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근원적 배경으로 ‘탈석탄’ 전환 정책을 지목한다. 지난해 유럽에서는 이례적인 겨울철 추위로 난방 소비가 급증했다. 이 여파에 가스 저장량이 예년에 비해 적었다. 여기에 대서양 동북부 연해인 북해의 풍속이 최근 20년 만에 가장 느려지면서 유럽 풍력발전 중심지인 이곳의 발전량이 급감했다. 재생에너지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석탄 화력발전량을 늘렸겠지만, 탈석탄 정책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석탄발전을 늘릴 수 없게 되자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유럽 경기회복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게 됐다. 천연가스는 유럽 전체 전력의 23% 정도를 차지한다. 그만큼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 물가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달 3%를 기록해 이미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는 에너지 대란 해결 방안으로 원자력발전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총리실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 달성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최첨단의 소형 모듈 원자로(SMR) 사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기업부는 조만간 롤스로이스 컨소시엄의 SMR 사업 지원을 승인할 예정이다.
영국 내 7개 원전은 전력 수요의 17%를 채우고 있으나 2024년에는 그 비중이 절반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풍력발전량 급감에 따른 전기료 폭등으로 풍력과 태양광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할수록 관련 비용이 커지면서 이로 인한 경제 부담에 탄소 중립 목표 달성 가능성이 더 낮아지는 모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용어 설명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친환경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환경 부담을 이유로 주요 에너지 투자와 생산은 물론 태양광·풍력·전기차 기술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리튬, 등의 금속 공급이 제한되면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