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점자 표기 법제화 완료…2024년부터 약사법 개정안 시행

입력 2021-10-03 07: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국내 점자 표기 의약품 2.7% 불과…부광약품이 품목 절반 차지
법안 발의 최혜영 의원 6일 국감서 식약처에 진행사항 질의 예정

(제공=이미지투데이)

#시각장애인 김성민 씨(가명)는 전봇대에 이마를 부딪혀 상처를 입었다. 집에 있는 연고를 며칠간 발랐는데 알고 보니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아닌 입술 보습제였다.

#시각장애인 이주연 씨(가명)의 연례행사 중 하나는 ‘유통기한 지난 약 골라내기’다.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스스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 도움은 필수다. 게다가 어떤 약인지 구분하기 위해 처방제조약, 상비약 등에 밴드형 고무줄·기저귀용 노란 고무줄로 묶어둬야 한다.

국내 시각장애인들이 의약품 사용 시 겪는 어려움은 특별함이 아닌 일상이다. 유통기한은 고사하고 어떤 제품인지조차 알 수 없어 오용이 빈번히 발생하곤 한다.

다행히 의약품 점자 표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성은 한 걸음 개선될 전망이다. 지난 6월 29일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안전상비의약품 및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는 의약품·의약외품의 용기·포장과 첨부문서에 시각·청각장애인이 활용할 수 있는 점자,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 의무 표기’가 2024년 7월 21일부터 시행된다.

3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본회의 의결 이후 식약처, 제약업계, 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이 모여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6일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나올 예정이다.

최혜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식약처가 준비 작업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는지 짚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점자 표기 등 의약품 정보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가 표시하기 쉽고 당사자도 읽기 쉬운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표준화된 기준 마련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장애인 대상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 정보의 효율적 전달체계 마련을 위해 올해 3월부터 연구용역사업을 시작하며 관련 작업에 돌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점자 표기는 물론 장애 유형에 따라 갖춰야 할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연구용역을 시행해 이를 3년 뒤 시행되는 제도에 활용하고자 한다”며 “연구용역은 올해 안에는 끝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같은 변화를 반기고 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10여년간 숙원 사업이었던 의약품 점자 의무 표기가 현실화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다만 점자의 특성상 크기 조절이 힘들고 모든 내용을 표기하기에 한계가 있어 제품명, 용량, 유통기한 정도만이라도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음성변환 바코드에 식약처 의약품안전나라에 등록된 정보를 활용해 더 많은 정도를 연동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최혜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점자 표기된 일반·전문의약품(2020년 6월 기준)은 94개, 참여 기업은 17곳이었다. 국내 의약품 제조업체가 639개라는 것을 감안하면 2.7%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품목의 절반 이상(42개)은 부광약품이 차지한다. 부광약품은 회사 방침으로 자발적인 의약품 점자 표기에 나서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그간 법적 규정이 없다 보니 시각장애인협회를 통해 검증을 받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점자 표기를 시행해왔다”며 “사회 공헌 차원에서 꾸준히 시행할 예정이지만 일방적으로 법제화만 할 것이 아니라 참여 기업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여러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3년 후 시행하는 개정안에는 우선 안전상비의약품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되지만, 식약처는 확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식약처 관계자는 “하위규정으로 어떤 의약품에 적용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어 상비약 외에도 다른 의약품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며 “이를 위해 장애인단체, 협회, 제약업계 등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를 당장 모든 품목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우선순위를 정하고 품목을 점차 늘려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팀장은 “생리대를 포함한 의약외품과 안약, 변비 및 설사약 등 우선적으로 필요한 약 20개 품목 리스트를 식약처에 전달했다”며 “단계적 시행 과정에서 식약처·제약업계와 꾸준한 소통을 통해 점차 품목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향후 제형별 품목별로 점자 표기를 늘릴 뿐 아니라 발달장애 등 더 많은 장애유형에서 의약품 접근이 쉬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