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저녁 먹고 로블록스(Roblox)에서 만나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초등학생 3학년 이 모양은 집에 와선 모바일로 메타버스에 접속한다. 친구들과는 탈옥게임 ‘프리즌 라이프(Prison Life)’를 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캐나다에 사는 사촌 오빠와 ‘에어플레인3(Airplane3)’ 게임에서 만나기로 했다.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더욱 재미있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가정주부 30대 김 모 씨는 최근 후배들이 제페토에서 의상을 디자인해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차는 간단했다. 제페토 스튜디오에 접속해 포토샵으로 디자인을 올리기만 하면 심사를 거쳐 판매가 가능하다. 벌써 한 달에 1500만 원이나 버는 크리에이터가 등장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도전해볼까 고민 중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대해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라고 정의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뜨겁다. 미래의 고객을 잡고,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와 제조·유통업계, 금융업계까지 메타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분주하다. 또 시장 선점을 노리는 크리에이터들도 메타버스에 뛰어들고 있다.
◇구글 트렌드 ‘메타버스’ 관심도 한국이 ‘2위’
올해 들어 8월까지 구글 트렌드에서 ‘메타버스’에 관한 세계 관심도를 살펴보면 중국이 1위(관심도 100), 대한민국이 2위(관심도 54), 싱가포르가 3위(관심도 37)였다.
메타버스의 대표주자인 로블록스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플랫폼 업체인 네이버와 NC소프트, SK텔레콤도 자체 메타버스 생태계를 내놨다. 여기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체와 유통업계도 마케팅과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테마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주목받으며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에서의 관심도 확대하고 있다.
신석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메타버스는 단기간에 사라지는 트렌드가 아닌, 인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빅 웨이브(Big Wave)가 될 것”이라며 “헬스케어와 제품 및 서비스, 교육, 업무 프로세스, 유통 등의 분야가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타버스가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관련 사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한국판 뉴딜 2.0 연설을 통해 “메타버스와 클라우드,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 ICT 융합 신산업을 지원해 초연결, 초지능 시대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한국판 뉴딜 2.0의 5대 과제로 ‘디지털 초혁신 프로젝트’를 선정해 2025년까지 국비 2조6000억 원을 들여 메타버스 등 신산업을 적극 육성해 의료와 관광, 건축, 쇼핑, 방송, 교육 등 산업 전반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개발사를 150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석왕헌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메타버스는 실제 세계와 가상 공간을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화해 나갈 것이므로, 민간과 정부가 협력을 통해 선제적으로 관련 기술 및 서비스를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메타버스에 관한 기술 및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블록스의 글로벌 ‘침공’…네이버 제페토의 ‘반격’
월간 활성 이용자 1억5000만 명, 하루 접속자 4200만 명에 달하는 글로벌 메타버스 공룡 로블록스는 지난 7월 한국 법인을 설립해 국내 시장에 본격 상륙했다. 로블록스의 강점은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참여한다는 점이다. 생태계 내 게임 개발자는 800만 명, 개발된 게임 수는 5500만 개, 개발자 수익은 2억5000만 달러(약 2900억 원)에 달한다.
이에 대항할 국내 대표 메타버스로는 네이버의 제페토(ZEPETO)가 꼽힌다. 2018년 8월 선보인 제페토는 올해 2월 가입자가 이미 2억 명을 돌파했다. 현재 해외 사용자 비중은 90%에 달할 정도로 글로벌 인지도가 높다.
게임업계가 로블록스에 열광한다면, 제페토는 엔터테인먼트와 패션 간 시너지에서 강점을 보인다. 블럭 모양의 아바타를 사용하는 로블록스와 달리, 제페토는 3차원 개인 아바타 활용으로 인간 형상과 유사해 의류, 모자, 가방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 장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인스타그램’이 있다면 제페토 월드엔 ‘피드’가 있다. 사진을 올릴 수 있고, 팔로우와 팔로잉 기능도 갖췄다. 생태계 내 가상 화폐인 코인과 잼만 있으면 아이템을 사고 팔 수 있다. 기업들은 아이템으로 꾸민 또 다른 나를 뽐내기 위한 피드에 주목한다. 아이템 판매는 물론,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아서다.
구찌와 디오르 같은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은 쇼룸을 열고, 아이템을 판매하며 마케팅 공간으로 활용한다. 아이템을 만들어 파는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제페토 내 아바타 의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렌지’는 월 1500만 원 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굿즈 사업과 팬 행사 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걸그룹 블랙핑크가 제페토에서 진행한 팬 사인회에 5000만 명이 올리며 흥행하자,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는 70억 원을 제페토에 투자했고, YG와 JYP엔터테인먼트도 각각 50억 원을 투자했다.
게임업체 NC소프트도 올해 1월 소셜서비스에 가까운 ‘유니버스(UNIVERSE)’를 출시했다. 연예인들과의 소통을 전문으로 하며, 해당 연예인의 팬으로 활동을 기록해주는 라이프로그 기능을 제공한다. AI 보이스로 연예인과 통화하는 프라이빗콜과 연예인 아바타 등도 제공하고, 사용자가 만든 저작물을 공유하고 판매할 수 있다. SK텔레콤도 8월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내놨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제페토는 유저들이 빠르게 늘어나며 활동성이 증가하고 있어 메타버스 시대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라며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의류나 액세서리 등의 구매로 매출을 창출하고 있으며, 유명 브랜드나 연예인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