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시행에 들어가지만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지키기 어려운 실정이고, 이는 의무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모호한 내용의 법 시행을 밀어붙이면서 산업현장의 일대 혼란과 심각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종업원 50인 이상 3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중대재해법 이행준비 및 애로사항 실태’에서 나타난 결과다. 전체의 66.5%가 법 시행령에 규정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를 준수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종업원 1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같은 답변을 한 곳이 77.3%로 더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유(중복응답)에 대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47.1%)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준비기간 부족’(31.2%), ‘과도한 안전투자 비용’(28.0%)을 꼽았다. 또 준수하기 힘든 규정은 ‘인력·시설·장비 확충과 위험요인 개선을 위한 예산편성 및 집행’(41.7%), ‘의무 이행사항 점검 및 개선’(40.8%)을 들었다. 법 시행 시 가장 큰 애로는 ‘의무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경영자 부담 가중’(61.5%), ‘종사자 과실로 재해가 발생해도 경영자 처벌’(52.2%), ‘과도한 형벌에 대한 공포’(43.3%) 순이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9월말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경영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무를 위반했을 때 어느 정도 처벌을 받는지, 중대재해의 기준과 범위가 뭔지 모호하다. 형벌의 과잉에 대해 경영계가 거듭 우려하고 제도보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산업현장의 혼란과 경영 위축, 불필요한 소송 남발 등이 불보듯 뻔하다. 법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주의 의무는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근로자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사업주에 지울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들이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산업안전을 강화하고 사업장 재해를 막는 것은 당연한 방향이다.그러나 처벌 일변도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고, 이런 상태로는 법이 제대로 된 구실도 할 수 없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가장 시급히 보완돼야 할 과제로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규정 마련’(74.2%)과 ‘형사처벌 수위 완화’(37.3%)를 꼽았다. 산업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법 시행은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기업들의 현실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경영책임자에 산업재해의 무한책임만 지우고 과잉처벌이 남용될 소지만 큰 법 규정을 빨리 손질하고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