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엉망이 된 주택 수급으로 ‘미친 집값’이 됐고, 온갖 규제의 대못으로 시장과 서민의 주거 사다리가 완전히 망가져 정상으로 되돌릴 길마저 막막하다. 파장이 오래가면서 주거안정을 위협하고 국민 삶을 계속 짓누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주머니 속 대책이 많다”고 했던 그 주머니에 쓸모없는 것들만 가득했던 것 같고, “부동산 문제에 자신 있다”던 호언장담은 어떤 세상 얘기였는지 모르겠다. 정부 말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벼락거지’가 됐다며 절망하고, 힘들게 집 한 채 마련한 이들은 세금폭탄에 분노한다.
집값 잡겠다며 4년여 동안 쏟아낸 스물 몇 차례의 대책은 한결같이 집값 폭등의 불쏘시개였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모두 지난 정권의 적폐 때문에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는 ‘남탓 DNA’는 임기 말인 지금도 변함없다. 집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이들을 갈라쳐 증오를 부추기고 정권의 기반으로 삼는 퇴행적 분열주의 또한 여전하다.
어떤 실패도 당대 정권의 책임이다. 그걸 감당하는 최소한의 책임의식과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 실정(失政)을 인정하고 정상으로 되돌릴 용기와 상식도 없다. 애초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 민생을 편안케 할 자격도 역량도 없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무능한 좌파들이 걸핏하면 모든 부동산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들고 나오는 것이 불로소득 환수와 토지공개념이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통령 당선 즉시 ‘부동산 대개혁’에 나서겠다”며, 불로소득을 뿌리뽑기 위한 ‘개발이익 국민환원제’와 ‘건설·분양원가 공개’, ‘국토보유세 부과’ 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실패만 거듭해 온 시장 부정(否定)의 규제를 더 세게 밀겠다는 얘기다.
또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내놓은 ‘지대론(地代論)’의 몽상이다. 그는 1879년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빈곤의 원인은 천부(天賦)의 공동재산인 토지를 사유하는 데 있고, 그 지대가 불로소득으로 모든 경제적 악(惡)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대를 몽땅 환수하고 다른 세금은 폐지하는 ‘토지단일세’(land only tax)를 주창했다.
혁명적이었지만 공허했고, 그 이론은 처음부터 당시 주류 경제학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공산(共産)의 토지국유화를 뜻했음에도 카를 마르크스조차 “잉여가치의 특성을 전혀 이해 못한 한심한 논리”라고 일축했다. 넓은 땅 농경사회에 머문 발상인데다, 시장의 복잡한 변수와 상황이 얽힌 경제현상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것이 본질적인 결함이었다.
150년 전의 그가 지금 이 나라의 어설픈 선무당들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된다. 하지만 짧은 식견이 아니라면 견강부회의 심각한 왜곡이다. 헨리 조지는 확장할 수 없는 토지와, 토지가치를 높이는 상품으로서 인위적 공급 탄력성을 갖는 주택을 구분했다. 과도한 지대 발생은 규제에 의한 공급 억제나 경쟁 제한에서 비롯된다. 해법도 경쟁 촉진을 통한 공급 확대의 시장논리에 있다.
대통령 되겠다는 지도자가 그릇된 이념의 죽은 이론을 왜곡한 극단적 규제로 대놓고 국민의 사유재산권과 시장을 부정하는 데까지 갈 태세다.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집 없는 이들에게는 듣기 좋을 불로소득 환수와 부동산 개혁을 내세우지만 선동적 포퓰리즘의 본색에 다름아니다. 가진 사람들의 집 한 채도 땀흘려 장만해 지키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 집값을 정부의 엉터리 정책이 다락같이 올려 놓았다. 이를 기득권의 투기로 몰아붙이고 불로소득의 프레임을 씌워 징벌적 세금폭탄으로 살기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규정하고, ‘국민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날 성취를 일군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의 가격 결정, 자유로운 거래, 부가가치 높은 방법으로 자산을 개발할 수 있는 사유재산권과 이윤 추구의 동기가 떠받쳐 왔다.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이상한 방향으로, 거꾸로 끌고 가려 한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