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우선 영국은 아시아·태평양에 성큼 다가섰다. 올해 2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공식 가입 신청을 한 영국은 9월 28일 가입 협상을 위한 회의장에 첫 등판하였다. 지난 6월부터 영국은 캐나다, 호주, 일본 등 CPTPP 11개 회원국과 가입안에 관한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이제 공식적인 협상장에 앉게 된 것이다. 영국이 경제동맹 EU를 떠나 거대 경제권역인 CPTPP의 12번째 회원국이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EU와의 관계를 끊은 영국은 미국과의 대서양 관계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 6월 ‘신 대서양헌장(The New Atlantic Charter)’에 합의하며, 역사·사회적으로 묶인 영·미 간 강한 동맹관계를 이어 나갔다. ‘대서양헌장’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던 1941년, 처칠 영국 수상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전후 세계질서에 관한 포부를 담아 8개 평화조항으로 구성한 공동선언이다. 영토 확장 등으로 힘겨웠던 근대 이전의 세계질서를 벗어나, 경제 발전 및 사회적 안전을 도모하는 현대국가로서 양국의 다짐을 담고 있다. 그로부터 80년이 경과한 지금, 양국은 ‘신 대서양헌장’을 통해 민주주의 및 개방사회 원칙과 가치,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부응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지속하고 영·미 간 동맹 관계를 강화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양국이 축을 이루어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 나아갈 것임을 앞선 헌장 때와 같이 8개 조항에 담아내었다.
이어 영국은 영연방국가(Commonwealth)와의 상호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5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영연방국가 체제는 24억 인구의 자발적 국제협력체이며, 이들 국가 내 60% 인구가 30대 미만인 성장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어 향후 미래가치가 높은 협력체제라 할 수 있다. 영국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지역은 인도·태평양이다. 현재 인·태 지역은 미·중 간 갈등이 집중돼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은 지역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020년 8월 미국, 인도, 호주, 일본 4개국이 쿼드(QUAD)를 공식 국제기구로 출범시킨 후 영국 이외에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이 대거 인·태 지역 전략에 참여해 왔다. 영국은 2020년 3월 ‘경쟁시대의 글로벌 영국(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태 지역에 대한 강한 관여 의지와 구체적인 외교 전략을 드러냈다. 올해 9월 15일 영국과 미국, 호주는 삼국 간 동맹체제인 오커스(AUKUS) 체결을 발표하였다. 오커스 출범이 공식 발표된 직후 EU는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고, 오커스 체결 과정에서 호주와의 핵잠수함 계약이 무산된 프랑스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미국, 호주 대사를 소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중개한 영국에 대해 프랑스는 기회주의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인도·태평양을 누비며 신 동맹체제를 구축한 영국은 중국에 대해서도 강한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오커스 출범 직후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중국의 국방비 지출과 더불어 해군과 공군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며, 이에 따라 인·태 지역 갈등이 고조될 것임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양안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 9월 27일 베트남으로 향하던 영국의 호위함 에이치엠에스(HMS) 리치먼드 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하여 중국이 즉각 반발하기도 하였다.
이제 글로벌 브리튼을 꿈꾸는 영국은 미국, 영연방국가 및 비유럽 국가와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은 좁은 북해(영국과 유럽대륙 간) 관계에 속박되었던 처지에서 벗어나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누비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으나 프랑스-영국 관계, 나아가 유럽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