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출’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정부가 폭증하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강력한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인데요. 경제 위험요인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하지만 당장 ‘돈줄’이 막히게 된 서민들은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여기에 시중 은행들이 정부 대책에 앞서 우대금리를 선제적으로 축소하며 금리까지 높이자 야속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데요.
서민들은 ‘대출 한파’를 넘어 ‘대출 빙하기’가 도래했다며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민들에게 대출 문턱은 항상 높았습니다. 까다로운 대출심사 조건에 대출을 신청하기부터 질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죠. ‘극악’ 수준의 대출 조건을 어렵게 맞춰가도 심사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나귀’를 맡기고도 돈을 빌렸던 시절이 있었던 걸 아시나요?
1987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은행인 한성은행이 문을 열었을 때입니다. 당시 은행 대출이란 개념이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탓에 대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자금이 부족했던 한 대구상인이 대출을 신청해왔습니다.
서울에서 사려던 물건의 값이 당초 예상보다 비쌌기 때문인데요.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신청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대출을 위한 사전 준비가 없었던 탓에 막상 대출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간 거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문서나 땅문서같은 담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 상인의 신용도를 가늠할 길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상인은 타고 온 당나귀를 담보로 내밀었고, 첫 대출 손님을 놓칠 수 없었던 은행원은 당나귀를 맡고 돈을 내주었습니다. 당나귀가 우리 은행사 최초의 담보1호가 된 순간입니다.
훗날 이를 두고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은행은 상인에게 없는 부동산이나 귀중품을 요구하지 않고 상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당나귀를 발견하고 자금을 지원해줬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최 위원장이 ‘당나귀 담보’를 거론한 것은 동산대출의 활성화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화와 함께 최 전 위원장의 말이 다시 회자 되는 것은 한없이 턱없이 높아진 대출 문턱이, 한없이 안타까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는 이번 가계부채 관리 강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키로 한 은행이 나오는 등 부작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민 경제를 지키기 위해 틀어막은 대출로 인해 서민들의 경제적 안전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