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대한 페이스북의 열정은 진심이었나 봅니다. 20년 가까이 쓰던 ‘페이스북’이란 이름을 ‘메타(Meta)’로 바꾼답니다. 정식 명칭은 ‘Meta Platforms Inc’.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서 ‘페이스북’ 브랜드는 계속 사용하지만, 산하 VR 브랜드 ‘오큘러스’는 이름은 바꾸기로 했습니다. 회사 로고도 알파벳 소문자 ‘f’에서 ‘다리 없는 안경’ 모양으로 교체됩니다. 2004년 창립 후 SNS 산업을 선도했던 페이스북은 메타버스가 향후 SNS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확신이 있나 봅니다. 메타는 ‘페이스북’의 성공 계보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28일(현지시간) 앤드류 보스워스 페이스북 리얼리티 랩스 책임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내년부터 ‘오큘러스 퀘스트’는 ‘메타 퀘스트’로, ‘오큘러스 앱’은 ‘메타 퀘스트 앱’으로 변경돼 사실상 오큘러스 브랜드가 소멸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내년 중 페이스북 계정과 연결하지 않아도 퀘스트에 로그인할 수 있게 된답니다.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로 바꾼,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젊은이들의 페이스북 이탈 때문입니다. 수익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광고사업이 위기를 맞을 정도랍니다. 산하 동영상 공유 앱 인스타그램은 젊은 층 사이에 인기가 많은 반면, 모회사인 페이스북은 거의 중장년층만 이용합니다. 청소년들 입장에선 부모·학교 선생님과 같은 SNS에서 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큰 것 같습니다.
젊은 층이 갈아탄 새로운 플랫폼은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내 커뮤니티입니다. 원래는 여러 사람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마련된 친구맺기와 채팅 기능이 SNS로도 기능하게 됐습니다. 게임 내에서는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 외모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선 외모지상주의, 부모 경제력이나 거주지역에 의한 격차가 드러나지만, 가상 공간에서는 이런 것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이렇게 게임 내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한 세대가 앞으로 5년이면 사회에 나오게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이들이 가상 공간 내 사무실에 출근해 아바타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반드시 ‘메타’를 찾을 것이라고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격 근무가 확산,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차세대 SNS 시장에선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이 다음 패권을 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지요.
페이스북은 사명 변경과 함께 앞으로 메타버스 사업에 더 주력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7월 더버지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향후 5년 안에 소셜미디어 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갈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커버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PC나 스마트폰 화면 내 존재였던 인터넷이 물리적 제약 없는 메타버스로 진화해 현실과 융합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와 같은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 세계를 일컫는 말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SF)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현재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가상 공간에서 다른 유저들과 아바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의 총칭으로 사용됩니다.
메타가 순항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우선, 하드웨어면의 제약입니다. VR용 헤드셋은 전 세계 13억 대인 스마트폰에 비하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입니다. VR 광고 시장도 아직 확립되지 않아 돈벌이를 위한 사업 기반이 미비합니다.
페이스북은 2014년 VR 헤드셋 ‘오큘러스 VR’을 인수해 하드웨어 면에서는 선수를 쳤습니다. 메타버스 기반 ‘호라이즌’ 서비스를 시작하고 일부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회의나 세미나 개최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외부 기업과 개인도 개발에 참여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만큼 얼마나 폭넓은 기업을 끌어들일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을 보입니다.
가상 공간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자산이 거래되지만 돈세탁 대책이나 금융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SNS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나 정치적 선전, 사이버 폭력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나오고 있는데,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메타버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안상의 과제도 있습니다. PC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이러스나 해킹 위협을 어떻게 막을지, 대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전문 기업도 메타버스에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명 변경에 대해선 꼼수라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이 증오 발언과 허위 정보, 극단주의적 사상을 유포하고 10대들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쳤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가 있었는데요. 이에 따른 비판 여론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라는 겁니다.
하지만 사명을 바꿨다고 기업 이미지가 곧바로 쇄신될까요? 구글은 2015년 지주회사로 형태로 전환해 모회사 알파벳을 세워 기업 재편을 도모했지만 아직도 알파벳은 낯설기만 합니다. 던킨은 2018년 회사명에서 '도넛'을 제거하고 커피 및 기타 분야에 대한 중점을 강화할 방침을 제시했습니다. 애플은 2007년 회사명에서 '컴퓨터'를 분리해 가정용 기기나 휴대전화 진출의 움직임을 반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