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산 더스윙 대표
단계별로 어떤 특징이 있으며 최악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전년도 실적이 없어서 성장률 자체가 계산이 안 될 정도의 극초기회사에 초기 구성원으로 이직을 제안받았을 경우이다. 다들 대표나 창업팀이 가진 업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 1000배는 중요한 것이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커미트먼트’, 즉 헌신의 정도이다. 얼마나 해당 서비스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큰 기회비용을 내며,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시간과 노력을 쏟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창업 붐이 불면서 너도나도 ‘스텔스 창업’이라는 명목으로 부업처럼 창업하곤 하는데, 이들이 주당 100시간을 쏟는 팀과의 경쟁에서 이길 리 만무하고, 그렇게 좋은 사업이라서 당신을 채용해야 할 정도인데 창업팀이 부업이라면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또한, 스타트업의 특성상 경력이나 학력에 걸맞지 않은 소위 ‘밑바닥 일’을 오래 해야 하는 겸손함이 필요한데, 만약 ‘커미트먼트’가 낮으면 지레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최악을 피하는 좋은 필터는 이름이 있는 초기 투자자, 특히 창업 경험이 있는 초기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면 좋다. 엔젤 투자의 경우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받을 수 있지만,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믿을 만한, 이름 있는 초기 투자자가 투자했는지이다. 이분들은 동업자 간 비율, 사업 아이템, 대표의 과거 경력 등 매의 눈으로 회사를 판단하고 투자한 만큼 최악의 회사를 유의미하게 걸러 준다.
둘째, 서비스를 출시하고 연 몇 배씩 매출 또는 팀이 급성장하는 회사이다. 극초기 회사의 경우 서비스를 론칭도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서비스를 출시하고 성장하는 이 단계까지 왔다면 앞으로 실패의 확률과 절대적 크기가 커서 마이너스 기대치가 가장 클 때이다. 그래서 이 단계로 이직할 경우 지원자 스스로 이 회사의 현금 상황과 사업모델에 대해 확신을 둬야 한다. 놀랍게도 꽤 많은 스타트업들이 시리즈 A 투자를 받고 나면 마치 다음 투자를 받을 것이 100% 확실한 듯 현금을 소진한다.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구조인지, 그게 아니면 투자를 워낙 크게 받아서 몇 년간 매출 고민 없이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사업지표들이 너무 좋아서 누가 봐도 투자를 받을 것이 확실한지 등을 파악하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빠르게 퇴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최악을 피하는 좋은 방법은 단도직입적으로 대표에게 묻는 것이 추천한다. 아직 이 단계의 회사는 대표가 직접 면접을 보게 되므로, ‘현재 사업모델로 지금 또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이익을 낼 수 있는지’와, ‘런웨이(추가 투자 없이 지금부터 현금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의 시간)가 얼마인지’를 꼭 묻고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는 회사는 거르는 것이 좋다.
셋째, 이미 수백 명 이상의 직원이 있고 연 50~100%의 성장을 하는 회사의 경우이다. 이런 단계의 회사는 소위 ‘유니콘’이라 불리며 전 직장 연봉을 무조건 맞춰주는 데다 망할 염려도 없어 보여 스타트업 업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이직을 결정하는 단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만큼 이직 실패의 확률이 높다. 이 회사들은 거대규모의 투자자금을 유치했거나 매출과 이익이 안정적이고 빠르게 성장 중인 만큼, 채용 속도가 어마어마하고 그런 만큼 퇴사 속도도 빠르다. 전장이 넓고 할 일이 많아 채용을 늘리면, 기존 개국공신 중 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융합이 어렵거나 협업할 체계가 없고, 또는 반대로, 개국공신이 한 번에 나가 버려서 인수인계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초기 스타트업에 입사한 것처럼 정신없이 모든 것을 다하고 일 년 내내 바빴지만, 성취도는 낮은 상태가 찾아오기 쉽다. 그래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내가 들어가게 될 팀, 상사, 사업영역, 나에 대한 기대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때 최악을 피하는 좋은 방법은 현직자와 함께 일할 동료들을 인터뷰해 보는 것이다. 이 단계 회사들은 이미 인사팀이 잘 꾸려져 있어서 인사팀, 직속 상사 및 임원과 면접을 보고 채용과정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같이 일할 동료와의 인터뷰를 인사팀에 요청하길 추천한다. 겉에서 보기에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회사지만, 내가 들어가는 팀과 내가 하는 일은 전혀 딴판일 수도 있기 때문이고 같은 팀의 두 명만 만나 보아도 구직자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바야흐로 인재 전쟁의 시대이다. 과거에는 대표들이 한정된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시간 대부분을 썼다면, 이제 거의 동일한 만큼의 시간을 인재 유치에 쏟고 있다. 스타트업 구직 가이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면서도, ‘아, 이 정도면 스윙은 참 일해 보기 좋은 회사인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다시 한번, 간절하게 입사 지원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