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폴란드, 난민수용과 사법통제 놓고 대립
집권 PiS “EU 자유주의 가치, 폴란드 전통 위협” 인식
EU가 회복기금 지원 막자 폴란드 총리 "3차 대전" 운운
폴란드 정부와 법원이 유럽연합(EU)에 반기를 들면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폴렉시트(폴란드의 EU 탈퇴)가 일어날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난민 갈등으로 시작한 폴란드와 EU의 갈등은 이제 사법통제를 놓고 대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지에선 당장 폴렉시트가 벌어질 가능성은 작게 보면서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소개했다.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10월 7일 자국법이 EU 조약이나 결정에 앞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14명 중 12명은 폴란드가 EU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주권까지 넘겨준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소식에 룩셈부르크 외무부는 “폴란드가 불장난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회원국 법원이 EU 조약과 헌법이 양립할 수 없다고 판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이어 “판결은 EU 토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유럽 법질서 통합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라며 폴란드에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은 EU와 폴란드가 폴란드 사법통제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이는 중 나왔다. 사법통제 논란은 폴란드에서 언론과 법원의 독립성 축소를 옹호하는 ‘법과정의당(PiS)이 권력을 잡은 후 줄곧 제기되다가 최근 심화했다.
EU 회원국의 압박이 계속되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EU 정상회의에서 폴란드 헌재 결정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EU가 우리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며 반발했다. EU가 경제회복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3차 세계대전을 치르자는 얘기”라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 같은 갈등은 EU 동부 확장의 대성공으로 여겨졌던 폴란드에서 일어난 놀라운 반전이라고 FT는 설명했다. 40년이란 세월 철의 장막 뒤에서 존재했던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서구권과 협력을 시작했다. 폴란드의 가입이 중부 유럽의 경제 호황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랬던 폴란드가 최근 몇 년간 EU에서 가장 반항적인 회원국이 됐다. 계기는 난민 위기였다.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등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EU의 난민 분산수용 정책을 거부했고, EU는 2017년 제재에 들어갔다.
더 나아가선 우파 정당 PiS가 2015년 집권당이 된 후부터 마찰이 더 커졌다. PiS는 정권 내내 사법부를 행정부에 점진적으로 종속하는 개편에 착수했고, 사법적 독립을 지키려는 EU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궁극적으로 PiS는 EU의 자유주의적 가치가 폴란드의 보수적 사회 전통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이를 차단하려 했다.
일련의 마찰에도 단기적으로 폴렉시트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폴란드인의 85% 이상이 EU 가입을 지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헌재 결정 직후 폴란드에선 EU를 지지하는 시민 10만여 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폴란드와 EU 사이의 법적·정치적 긴장이 계속되는 만큼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특히 EU가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폴란드를 고립시키는 것은 자칫 EU 전체를 흔드는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코의 베라 주로바 EU 집행위원은 “폴란드가 유럽 전역에서 동등한 규칙이 존중된다는 EU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유럽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래서 EU는 폴란드 헌재가 그리기 시작한 새로운 장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보고서에서 “EU의 기금 지원이 지연되면 내년부터 폴란드 통화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폴란드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앞으로 2년간 누적 1.4%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