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 막판까지 고심 중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재편 야심
미국 상무부가 요구한 반도체 정보 제출 기한이 하루 앞(한국 시간 9일)으로 다가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기업들도 정보 공개 수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 중이다.
8일 미국 상무부 반도체 정보 공개 사이트에 따르면 이날 현재 23개 기업과 관계기관이 반도체 정보 응답 서식을 제출했다.
이 명단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를 비롯해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이스라엘 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 등이 포함됐다.
지난 9월 미국 상무부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45일의 시간을 주고 재고 자료를 포함한 공급망과 관련한 정보를 이달 8일(현지시간)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업체들은 마감 시한이 한국시간으로 오는 9일인 만큼 남은 시한 내에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막바지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검토를 마치면 시한 내에 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정보 제출 요구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내부에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에 저촉되지 않고,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제외하는 선에서 제출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미 자료를 제출한 기업들 역시 민감 정보를 상당 부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워세미컨덕터는 제품별 최대 고객사 3곳을 묻는 항목에 대해 “당사는 나스닥 상장 기업으로서 해당 정보를 밝힐 수 없다”라고만 적었다. 또 제품별 재고와 최근 판매량 등 문항은 아예 공란으로 비워놨다.
TSMC 역시 공개된 제출 서류 항목 대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했으며, 추가 자료에 대해서도 ‘제한(restricted)’을 걸고 제출했다. 특히 TSMC는 블룸버그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TSMC는 언제나처럼 고객의 기밀사항을 보호하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사와 관련된 민감 정보는 제외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발언으로 해석된다.
업계는 미국이 이번 자료 제출을 기점으로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 자료 요구를 시작으로 향후 제2, 제3의 압박을 가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향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수입 조사 조치(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통해 지속해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미국의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주도로 개편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한국의 반도체 정책에도 관여하려 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압박에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큰 만큼,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이번 자료 제출 이후) 너무 부당하거나 우리 산업에 부담이 되는 자료를 요구하는 상황이 지속할 경우 정부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 장관은 오는 9일부터 사흘간 미국 출장길에 나선다. 문 장관은 방미 기간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한미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과 함께 이번 자료 제출 건에 대한 미국 측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