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드스트림2는 러시아 비보르크(Vyborg)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 루민(Lubmin)까지 1200㎞에 걸쳐 뻗어 있다. 2018년 건설 초기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던 이 파이프라인은 미국의 제재 협박과 동유럽 국가,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건설 프로젝트를 이행해 왔다. 미국은 노드스트림2에 대해 오바마, 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건설 반대의 입장을 고수해 왔으나, 바이든 정부는 지난 7월 미·독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오랜 반대 입장을 철회하여 이 사업에 동의하였음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국 정부는 동유럽에서의 해묵은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드스트림2 가스관과 관련한 이면 합의조항을 남겼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기존 가스관 통행료를 지속하여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며,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에 강압적 행위를 한다면 미국이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것 등 기존 러시아 가스관 정치의 폐해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국의 동의를 얻은 직후 노드스트림2의 건설 및 운영기업인 가즈프롬은 지난 9월 노드스트림2가 준공되었음을 공개하였고, 이제 유럽연합(EU)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노드스트림2는 러시아와 유럽 간 지정학적 측면에서 에너지안보와 전통안보의 다양한 문제가 집결된 양상을 보여준다. 그간 미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정치를 비판해 왔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유럽지역 총 가스 수입의 약 43%를 러시아가 점하고 있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존 파이프라인 경유 국가들은 노드스트림2를 통해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해 왔다.
실제 최근까지 에너지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의 입장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다. 러시아는 EU가 노드스트림2를 승인하도록 하기 위해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도록 물량을 조정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독일은 그동안 그린정책에 따른 에너지전환으로 이미 40% 정도의 대체에너지 사용국가가 되었지만, ‘그린 스태그플레이션’과 코로나19발 경제지표 하락에 장기적·구조적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예측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린정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환경을 위해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며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환경정책에 따른 물가상승을 뜻하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을 넘어 그린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언급되는 것은 환경 및 에너지 정책에 의한 물가 상승이 한계치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확대는 유럽 에너지 문제에 단기적 해법이 될 수 있으나, 동유럽 국경 주변의 긴장을 더욱 부채질하는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서방이 노드스트림2와 우크라이나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지난 1일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인접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이례적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국경 300㎞ 지점에 주요 군사장비가 옮겨지고 있음이 위성영상에서 포착되었고, 뒤이어 9만 명의 러시아 군대가 흑해와 국경지대로 이동했음이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에 의해 알려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친서방 정부가 출범하던 시기에 즈음하여 우크라이나를 다각도로 압박해 왔다.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시 러시아는 주민투표에 의한 합법적 과정이라 주장하였으나, 당시 러시아는 계급장과 명찰이 없는 군복 차림의 정체불명 군인들을 주요 공공기관, 공항, 군부대 등에 급파해 작전을 수행하게 하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취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서방의 개입을 회피하면서 효율적으로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치러낸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연대해 온 유럽적 가치와 파이프라인을 통해 더 많은 러시아산 에너지를 획득할 수 있는 현실적 가치 사이에서 유럽은 어려운 선택지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