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300% 이상 올랐고, 이달 초 6만80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연내 10만 달러 돌파도 무난하다고 보는데, 그렇게 되면 나카모토는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과 맞먹는 순자산으로 세계 10대 부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주목할 건 그가 이처럼 세계적인 부자여도 그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는 2009년 1월 비트코인을 출시하기 전, 2008년 백서에서 P2P 디지털 통화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사실, 비트코인 등장 초기에는 아무도 나카모토의 정체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비트코인에 실체적인 가치가 없고, 소수의 지지자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카모토는 2년간 개발에 적극 관여하였고, 복수의 개발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는 두 개의 이메일 주소와 하나의 등록 웹사이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2010년 12월 돌연 모습을 감췄습니다.
나카모토의 신원을 결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단 하나라고 합니다. 그가 100만BTC를 보관한 계좌를 관리하는 비밀키입니다. 나카모토임을 증명하고 싶다면 그 계좌의 코인을 일부라도 인
지금까지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인물은 많았습니다. 가상거래를 통해 비트코인을 받은 최초의 인물은 할 피니라는 가상화폐의 개척자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피니가 나카모토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지만, 그는 2014년 8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으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비트코인 창시자임을 부인했습니다.
또 한 명은 미국 로스엔젤레스(LA) 근교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 도리안 나카모토였습니다. 2014년 3월 뉴스위크가 도리안이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지목하는 표지 기사를 실으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정작 전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도리안은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후 직장생활이 힘들어졌다며 자신은 비트코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같은 해 금융서 저자인 도미닉 프리스비는 자신의 책을 통해 컴퓨터 엔지니어이자 법률학자인 닉 사보가 나카모토 사토시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보와 나카모토의 글 쓰는 스타일이 비슷하고, 둘 다 경제학자 카를 멩거를 참조했으며, 사보가 가상화폐 도입을 초기에 시도한 디지캐시에서 일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에 대해 사보는 “나는 나카모토가 아니다. 하지만 감사하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의 정체를 둘러싼 의문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2013년 4월 사망한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동업자인 라이트를 상대로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클라이먼의 유족은 라이트와 클라이먼이 초기에 비트코인 100만 개를 공동으로 채굴했다며, 그 절반인 50만 개의 비트코인을 자신들이 가질 자격이 있다며 반환 소송을 냈습니다. 100만 개의 비트코인은 현재 시세로 따지면 약 640억 달러(약 75조 원)에 이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라이트가 비트코인 ‘공동’ 창시자인 셈이 됩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자신이 비트코인의 ‘단독’ 창시자라며 클라이먼의 역할은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트코인 창시자는 라이트가 맞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 비트코인 창시자를 둘러싼 논란은 나카모토가 1인이냐, 아니면 복수의 인물이냐, 그리고 그, 그녀, 그들이냐가 됐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 해당 소송과 비트코인 자체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제 수천만 명의 투자자를 둔 1조 달러 시장으로 커졌습니다. 그것을 규제하려는 정부도 있고, 밀어주는 정부도 있습니다. 또 그 배경에 있는 기술은 세계 금융 시스템을 새로 쓰는 수단의 하나가 될 거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자산을 누가 지배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이런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야 합니다. 세계가 이 재판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