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등과 관련이 있더라도 비형벌법규에 대해서는 소급하지 않고 위헌결정이 인용된 사람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75조 일부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A 씨 등이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A 씨 등은 이른바 나주경찰부대 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유족이다. 이는 1950년 7월 나주경찰부대가 해로로 후퇴하던 중 완도군 주민을 사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0월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유족들은 2008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으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해 확정됐다.
이후 헌재는 2018년 민법상 소멸시효를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등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2019년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헌법재판소 75조 7항은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 해당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 이미 확정된 때에는 당사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재심사유조항)고 규정한다.
75조 6항은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것(장래효)을 원칙으로 한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형벌권 행사를 초래하는 형벌법규에 대해 위헌결정을 선고한 경우는 소급효 및 재심을 통한 구제를 허용해 국민의 권리구제, 기본권 보호 요청을 우선하도록 했다.
반면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법적 안정성의 이념을 우선해 장래효를 원칙으로 하면서 위헌결정이 선고된 헌법소원사건의 당해 소송사건에 한해 재심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A 씨 등은 “위헌결정이 내려진 헌법소원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니었던 청구인들의 재심대상판결 사건에는 위헌결정 효력이 미치지 않아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됐으므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 재판 청구권,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이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비상의 불복절차인 재심제도를 구성함에 있어 입법자에게 부여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위헌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의 변동을 저지하는 것과 이미 판결을 통해 확정된 경우 그 기판력을 배제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라도 이를 위헌결정의 소급효, 재심사유 허용 여부를 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봤다. 다만 이들에 대해 특별재심을 허용해 구제하는 것을 고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일반적 사건에 적용되는 재심사유조항, 장래효조항에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외면한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