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이라도 여미지’란 생각을 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감염 우려에 신경이 곤두서 있기도 했고, 그녀가 아이 외투를 차에 놓고 왔을 수도 있는 터였다. 살갑지 않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러면 감기가 더 심해져요”라며 아이의 매무새를 고쳐줬다. 그러자 그 엄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애 만지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이의 손을 낚아채 자리를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내 자식이 아닌 아이에게 시선을 거둔 일 말이다. 사실 거리두기로 이웃을 볼 기회도 많지 않았다. 놀이터는 늘 한산했고, 산책길 씽씽카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중 ‘정인이 사건’을 접했다.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때였다. 관련 사건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본 뒤 며칠간 잠을 설쳤다. 두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이후 소식들은 애써 외면했다. 관련 대책이 빠르게 마련되고 있다는 소식으로 미안함을 덮었다.
하지만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천안 계모 사건, 화성 입양아 학대 등 아연실색할만한 일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수법은 잔인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3만8900건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43명의 아이가 하늘로 갔다. 5년 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학대는 대부분 가정 내(87.3%)에서 벌어졌다. 신체(12.3%), 정서(28.3%)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몹쓸 짓(성 학대 2.2%)까지 했다.
아동학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빨리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아이를 구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동학대 발견율(아동인구 1000명당 학대 사례 발견율)은 4%에 불과하다. 10%가 넘는 미국, 호주와 비교하면 참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가장 낮다.
사람들은 체벌을 훈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관심이 문제다. 실제 학교 선생님, 가정폭력 보호시설 상담사 등 신고의무자의 신고 비율은 2016년 32%에서 지난해 28.2%로 줄었다. 감시 공백을 메워주던 이웃 등 비신고자들의 도움도 점점 줄고 있다. 어른들이 시선을 거둔 사이 아이들을 구한 건 ‘그들 자신(2016년 9%→2020년 14.2%)’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하지만 지금 마을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울음소리는 허공에 묻히고 있다. 너무 많은 아이가 희생됐다. 전염병만 탓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어두운 낯빛, 반복되는 울음소리는 아이들이 보내는 간절한 ‘SOS’다. 이제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과거, 전염을 핑계 삼아 고개 돌렸던 나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