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6515명은 해당 과목 성적이 공란으로 처리된 성적표를 받았다.
1994년도 수능이 처음 시행된 이후 수능 정답 효력에 대한 집행정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학생들은 이달 30일부터 시작하는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 등 대입 일정에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지난달 18일 치러진 수능에서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92명은 20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며 평가원을 상대로 정답 집행정지 신청을 내기도 했다.
논란이 된 문항은 생명과학Ⅱ의 20번으로, 동물 종 P의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 집단을 가려내고 옳은 선지를 골라내는 것이다.
문제를 보면 동물 종 P의 두 집단 Ⅰ,Ⅱ의 개체 수가 같다고 가정하고 검은색 유전자 A와 A*, 긴 날개 유전자 B와 짧은 날개 유전자 B*가 등장한다. 이어 이 유전자들이 각 집단에서 어떤 빈도로 나타나는지, 각 유전자의 우열 관계는 어떤지 등의 조건이 주어진다. 학생들은 이 조건을 바탕으로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오류가 있다고 지적되는 부분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계산할 경우 한 집단의 개체 수가 정상적이지 않은 수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학원가와 이의를 제기하는 측에서는 이 문항의 조건에 따라 계산할 경우, 특정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온다고 본다. 그러나 동물의 개체 수는 0 이하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도 문항의 오류를 일부 인정한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 및 정답 이의신청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원은 해당 문항의 이의신청 심사 결과 정답(문제)의 이상이 없다고 밝히며 이의신청이 제기된 문제 중 유일하게 이 결정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평가원은 “이의신청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문항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정답을 고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평가원은 9일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정 답결정 집행정지 일부 인용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및 대학들과 신속히 협의하여 빠른 시간 내에 향후 대입일정 등 필요 사항을 안내하겠다”며 “생명과학Ⅱ 20번 정답 결정 취소소송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후속 대입 전형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의 대입 일정 차질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본안 소송 접수부터 1심 판결까지 짧아도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서 출제 오류로 판명된 2014학년도 수능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 문항의 경우도 약 1년여 지난 2014년 10월 2심에 가서야 응시생들이 승소, 성적이 재산정됐다.
무엇보다 수험생 걱정이 가장 크다. 생명과학Ⅱ의 경우 전체 수능 응시생의 약 1.5% 수준이지만,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만큼, 상위권 대학·의약학 계열 전공 희망자 등의 입시 일정에 혼선이 빚어질 거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