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함께 양강(兩强)의 공방이 연일 뜨겁게 달아오른다. 3개월도 남지 않은 내년 3월 대선의 판세는 안갯속이다. 매일 여론조사기관들의 지지율 수치가 발표된다. 대체로 윤석열 후보가 앞서고 있지만, 삐끗 헛다리를 짚으면 뒤집히는 건 순식간이다.
치열한 검증의 시간이다. 대한민국 안팎이 격변하는 엄중한 시기에 나라를 5년 동안 이끌고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 후보가 과연 국가 리더십의 자질과 역량, 도덕성, 신뢰성, 미래를 내다본 시대정신을 갖추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다.
먼저 출발한 이재명 후보는 줄곧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파괴력 큰 공약을 간판으로 삼아 오다가, 여론이 따르지 않자 오락가락한다. “비록 신념이라도 국민이 공감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는 게 옳다”고 했다가 다시 “철회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의를 알 수 없고 방향성이 혼란스러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고, 그 스스로 포퓰리스트라고 자임한 면모다. 이 후보는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과 탈(脫)원전, 또 코로나 방역 실패에 대해 공격의 날을 세우면서 자신을 차별화한다. 지금 정권의 공정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던 ‘조국 사태’를 두고도 국민을 실망시킨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중도층 지지기반 확장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다. 기실 권력의 생리는 비정(非情)하고 야비하며 기회주의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아직 ‘정권심판론’에 머물 뿐, 뚜렷한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정권의 실정(失政) 비판과 잘못된 정책을 뒤집겠다는 구호에 그친다. 수권(受權)의 준비된 자세와 거리가 멀고 국정철학의 빈곤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 경제를 살리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이룰 것이며, 그동안 끊임없는 편가르기로 분열된 국민을 통합시키는 리더십을 어떻게 구현할 건지 구체적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 의구심이 여전히 큰 탓에 윤 후보 지지율이 국민들의 압도적 정권교체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
희한한 대선이다. 두 유력 후보 모두 중앙정치 경험 없이 국회의원 한번 해보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장과 검찰총장 출신이고, 진실이 무엇이든 대장동 사태니, 고발사주 의혹이니 하는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현실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비(非)호감도 또한 어느 때보다 높다. “뽑을 후보가 없다”며 고개를 돌리는 부동층이 늘고, 특히 20∼30대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깊은 불신과 혐오다. 두 후보 진영은 국가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산적 논쟁은커녕, 저열하고 천박한 막말과 모략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비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치의 최소한 품격마저 팽개친 지 오래다.
‘허경영 신드롬’이 거울이다. 2007년 대선 때부터 황당한 현금퍼주기 공약과 ‘공중 부양’ 등의 기행(奇行)으로 눈길을 모았던 그는 국가혁명당 후보로 이번에도 출마한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고 일갈하면서, 결혼수당 1억 원과 주택자금 2억 원 지원, 18세 이상 코로나 긴급생계자금 1억 원 지급 등을 내걸었다. 웃고 말 일도 아니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제치고 3∼4%대의 지지율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기성 정치에 보내는 국민들의 통렬한 냉소(冷笑)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인데, 도둑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인 세태를 반영한 비유다.
최선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덜 썩은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선거이지만, 특히 이번에 대통령을 고르는 일은 정말 고역이 되고 있다. 그래도 유권자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국제정세와 경제환경, 안보 구도가 격변하는 엄중한 대전환의 시대다. 지난 5년 잘못된 방향의 국가운영과 수많은 정책실패는 집값 폭등과 고용 대란, 성장 추락, 안보 불안으로 국민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다.
누가 더 이상의 국가 퇴행(退行)을 멈추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산적한 난제를 해결해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미래세대가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내로남불’의 독선과 반칙으로 무너진 우리 사회 공정과 정의의 가치도 다시 세워야 한다. 사탕발림에 속지 않는 유권자들의 냉철한 분별만이 나라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