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 외국인 관광특구 캠프보산…미군 감축·코로나19 이중고 “최악의 위기 상황”
“식사 중인 단골손님 미군들을 9시 되자마자 내쫓았습니다. 연말 장사 이제 좀 되나 싶었는데 다시 또 시작이네요. 우리 가게 매출은 정부가 정해줍니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한 18일 오후 9시.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케이시 앞 기지촌 케밥집 박 사장은 식사 중인 주한미군 켄트 씨를 내쫓았다. 위드 코로나로 외출 제한이 풀린 미군들이 캠프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거리가 활성화되나 싶었던 박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날 매출은 고작 4만 원이었다.
18일 찾은 캠프케이시 앞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캠프보산) 거리는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눈발로 을씨년스러웠다. 동두천시가 설치한 간판에 댄스 영상과 LED 조명, 거리 곳곳 설치된 스피커에서 들리는 K팝 노래들이 사람 없는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식당들은 오후 9시가 되자 문을 닫았고, 미군들은 부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클럽과 유흥주점이 있는 골목은 한산하기만 하다. 다양한 영어 가판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지닌 골목에는 문을 걸어 잠근 가게들만 남아있다. 이들 업소는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집합금지 행정명령에 따라 영업을 못 하고 있다.
캠프보산에서 7년간 피자집을 운영한 최 사장은 손님이 떠난 식당에서 주말 연속극을 시청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이 거리는 주로 단골손님 장사로 운영되고 있다”며 “정부 정책으로 단골 가족들의 주말 저녁 예약이 다 취소돼 잠도 오지 않아 가게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말 장사만을 생각했는데 남은 식자재들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며 “위드코로나로 연말 장사가 잠시 잘 되나 싶었는데 다시 ‘말짱 도루묵’ 됐다”라고 토로했다.
바비큐 점포를 운영하는 김 사장도 오후 9시가 되자 장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미 깨끗한 주방바닥을 걸레질하고 있었다. 김 사장은 “평소 주말 저녁에는 열 테이블 이상 손님이 왔는데 오늘은 딱 한 테이블만 채웠다”며 “거리를 나가보니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장사를 마무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군들도 점점 떠나고 거리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10년 넘게 바비큐 장사를 했는데 올해가 가장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캠프보산은 미2사단 병력 감축으로 경기가 침체한 와중에 코로나19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캠프보산 자영업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로 내몰렸다. 과거 1980년대 보산동에는 음식점과 클럽 등 400여 개 점포가 성업했지만, 현재는 4분의 1가량으로 줄었다. 남아 있는 가게도 문을 닫거나 휴업 중이었다.
동두천시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억 원을 투자해 그라피티 작가들의 작품을 건물 곳곳에 그려 넣고, 15개의 푸드트레일러를 설치했다. 12개국 음식점을 개장해 이곳을 세계음식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시 거리두기 상향 조치로 거리 활성화는 멀어지고만 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세계음식거리가 조성된 초반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유치되고 사람도 많아졌지만, 올해 수차례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면서 다시 저조해졌다”며 “내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뮤직센터 실내공연과 플리마켓 등 많은 사업을 펼칠 계획을 하고 있어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케밥집 박 사장은 “서울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이곳은 서울 사정과 매우 다르다”며 “자영업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면 이곳은 황폐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두천 캠프보산은 수도권 외각 자영업자들이 버티면서 상권을 지키고 있지만, 임계점에 도달한 듯했다. 활기를 잃은 이 거리에서 박 사장은 내일 장사를 위해 또다시 가게 문을 걸어 잠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