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지난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고백들을 숱하게 들었다. 허 후보를 찍었다는 유권자 중 일부는 부동산 가격 급등에 분노해 여당 소속 박영선 후보에게 표를 주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시장직을 던진 바 있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차마 투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단지 그뿐만은 아니다. 정부의 실정과 대안 없는 지금의 정치 현실을 상징적으로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에 가장 적합한 후보는 허 후보라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공약과 기이한 언행으로 유명한 그가 큰 선거에서 3위에 오른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얼마만큼 컸는지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바람을 지닌 국민이 적지 않았는지 허 후보는 실제로 득표 3위를 기록했다.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덕이 크긴 했지만, 1987년 대선 출마를 시작으로 이어져 온 34년 선거이력 중 최고 성과였다. 정치혐오의 표현, 정치 희화화라는 해석이 담긴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20대 대선을 석 달여 앞둔 현재 허 후보는 재보궐 선거 때의 기세를 몰아 대권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안이 없는 정치 환경은 변하지 않고, 그 속에서 허 후보의 허황되지만 답답한 현실을 꼬집는 말들에 관한 관심이 지속된 덕이다. 크고 작은 언론매체들이 최근까지도 잇달아 허 후보를 인터뷰하는 건 이런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허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선전할까.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실망은 여전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갖은 구설수와 논란으로 실망을 더하며 대안 없는 정치 환경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허 후보에게 모이는 표들 하나하나, 정치권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10억 원을 나눠주겠다는 사람보다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데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