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통주? 이제 술이다!

입력 2021-12-31 05:00수정 2021-12-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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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희 전통주갤러리 관장

홈술, 혼술 문화와 함께 소비패턴의 다양화로 꿈틀대기 시작하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모임의 확대, 때맞춰 시작된 전통주 온라인 판매 허용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온라인 전통주 판매량은 전년보다 최대 3배 이상 증가하였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소주는 127%의 성장을 보였다(G마켓 자료). 전통주 하면 흔히 생각하는 막걸리뿐 아니라 약주, 전통 증류식소주, 과실주 등 다양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실제 판매 증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2016년 397억 원에 그쳤던 전통주 시장 규모는 2021년에는 6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전체 주류시장 규모가 2016년 9조2961억 원을 기록한 이래 현재 연 8조 원대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것에 반해 놀라운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전통주에 관심을 갖는 세대가 5060세대에서 40대로, 이제는 MZ세대인 20~30대로 연령대가 점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고, 인터넷과 SNS를 통한 젊은층의 전통주 구입은 전통주의 본격적인 성장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여파? 전통주가 심상치 않다.

국내 유통되는 모든 주류의 제조 면허를 담당하는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새롭게 선보이는 술은 2020년대 들어 1년에 2000여 종에 이르고, 그중 탁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고 한다. 즉 매년 800여 종에 이르는 새로운 막걸리가 출시되고 있고, 이것을 바로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집집마다 술을 빚던 가양주 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철저히 파괴된 후 과거 시골 동네에서 몰래 담그던 밀주의 시대를 지나, 이제서야 다시 우리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전통주에 눈을 돌리게 하는가?

과거 우리의 술이 ‘애환’이었다면, 이제 술은 ‘문화’이다. SNS에 구매정보가 뜨면 5분 만에 매진되는 인기 약주를 어렵게 구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대! 이 감성이 이해되는가? 아직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거지’ 한다면 잠깐 시선을 돌려보자.

‘기생충’의 아카데미영화상 수상, 넷플릭스의 K드라마 열풍, 두 말할 필요 없는 K팝 인기로 대변되는 K문화가 한때의 열풍에 그치지 않고 이제 세계 문화사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이제는 부인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소위 마니아들만의 문화에 갇혀 있던 10~20여 년의 기간 동안 K문화는 침몰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재된 저력을 바탕으로 더욱 굳건하게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중문화, 그 다음은?

그럼 영상문화,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K문화 유행, 그 다음은 무엇이 될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우리가 먹던 음식, 마시던 술, 놀던 문화, 즉 우리가 평소 즐기던 우리의 문화 자체가 그 다음을 이어갈 것이다.

일본에서 ‘겨울연가’ 열풍이 일었던 2002년 이후 20여 년의 우여곡절을 넘어 이제 일본에서의 한류는 더이상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에 파고 드는 문화가 되었다(최근의 냉랭한 양국 관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지인들이 찾는 소주, 막걸리의 인기가 한때 우리나라에서의 사케 인기를 이미 훌쩍 뛰어넘었고, 한인마트가 아닌 일본 현지인들을 위한 한국상품 전문마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까지. 이는 기반이 단단한 문화가 어떻게 다른 문화 속에 자리잡게 되는가, 또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갖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20년의 시간이 숙성되어 다져온 일본에서의 한류가 유럽에서 미국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인터넷 은어로 소위 말하는 ‘국뽕’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런 조짐을 세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못 믿겠다고? 그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에펠탑 앞에서 수만 명의 인파와 함께 울려퍼지는 유튜브 영상을 신기해 하며 봤던 몇 년 전을 잠깐 떠올려보자. 그때 역시 우리나라 사람 그 누구도 그 다음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유럽의 아이들이 그들의 거리에서 한국어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외치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이것이 바로 K대중문화 다음이 바로 우리의 놀이문화, 우리의 식문화, 우리의 술문화, 즉 우리의 문화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전통주? 이젠, 술 SOOL!

다시 전통주로 돌아와보자. 한국문화의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이미 전통주의 수출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한인마트뿐 아니라 대형쇼핑몰에서도 한국 술을 찾는 것이 가능해졌고, 국순당에 따르면 2021년 월별 수출액은 전년 대비 이미 57%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1, 2월 기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전통주의 복원과 함께 뛰어난 품질의 술이 계속 발굴·개발되면서 전통주의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술은 어느 순간 수출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미 해외 유명 맥주들이 한국 공장에서 라이선스 생산되고 있는 것처럼 해외에서 제조되는 날까지 올 것이다. 상상해 보자. 쌀과 밀이 넘쳐나는 텍사스 어느 양조장에서 막걸리가 빚어지고, Made in USA 막걸리가 맥주의 자리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될 날을 말이다.

Made in USA 막걸리!

그럼 어느 순간 우리는 전통주라는 이름도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전통주가 아니라 ‘K-SOOL’, 아니 그냥 ‘SOOL’이다. 술, 소주, 막걸리, 약주가 사케나 테킬라처럼 세계인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그 노력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탑을 이루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문화 자체의 힘이다. 그 결실을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더 큰 미래를 위한 작은 도약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2003년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중동지역에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혹자는 비빔밥을 미국에서 먹는다 한들, 막걸리를 일본에서 마신다 한들 뭐가 그리 대단할 게 있냐고 묻는다.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한류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표출되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내면의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즐기기 시작할 때 우리 문화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경제적 파급효과를 굳이 몇천 억, 몇조 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시작하면 된다! 오늘 저녁 막걸리 한 잔에 부침개 한 장을 곁들인다면 바로 당신으로부터 우리 문화, 우리 경제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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