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노동정책
MB는 의료 영리화 추진 ‘역주행’
2019년 5.3%… OECD 중 꼴찌
“돈이 없어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선거운동을 하면서 남긴 말이다. ‘공공의료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 전 대통령은 당선 뒤 50%대에 불과하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전체 병·의원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의 비중을 30%까지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2005년에는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에 4조300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도 배정됐다. 당시 참여정부의 의사결정 라인에는 공공병원 확충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에 천문학적 예산까지 투입됐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비중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병상 중 공공병원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9.7%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국내 병원 중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3%로 ‘압도적인 꼴찌’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국가예산이 결합돼 추진됐음에도 공공의료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이면에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 뒤집기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바통을 넘겨받은 이명박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은커녕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며 역주행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병원도 외부 투자자의 채권 투자를 받고 수익을 나눌 수 있도록 한 ‘의료 채권법’을, 2009년 7월에는 원격 의료를 도입하고 병원 부대·수익 사업을 확장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결국 추진하지 못한 이 두 법안은 박근혜 정부가 법 개정이 아닌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추진하려는 ‘영리 자회사 허용’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도, 의료 영리화도 아닌 공공의대 설립과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확대에 집중하며 ‘제3의 길’로 내달렸다.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를 놓고 의료계와 충돌을 거듭하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한 2020년 6월에야 공공의료 확충과 의사 증원에 관한 법안을 상정했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15년 만이었다.
文, 지지세력 ‘민주노총’ 감싸기
“노사 문제, 혼란 부추겼다” 비판
노사관계 관련 정책 역시 뒤집기와 되치기의 역사를 반복하며 혼란만 부추겨온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2월 출범과 함께 노사 간 상호 안정, 자발적 참여와 협력, 국민경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기초 이념으로 하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노사관계 개혁방향’을 발표했다. 2003년 11월에는 노 대통령이 “노사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사실상 파업에 힘을 실었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2004년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462건, 근로손실일수는 119만8000일을 기록했다.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인 1997년의 노사분규 발생건수 78건, 근로손실일수 44만4000일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의 확립’을 천명하고 노동시장에서는 ‘유연성 제고’에 중점을 뒀다. 불법 파업에 무관용 원칙이 적용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다르게 대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 이명박 정부의 2008년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108건, 근로손실일수는 80만9000일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노조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았지만 60세 정년 의무화, 공공부문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통상임금 조정 등을 추진하며 새로운 분규의 불씨를 키웠다. 그 결과 취임 초기 비교적 안정적이던 노사관계는 취임 3년 차인 2016년 노사분규 발생건수 120건, 근로손실일수 203만5000건으로 크게 악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방위적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해 사용자는 물론 취업준비생들에게도 혼란을 줬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인 정치적 지지세력인 민주노총에 지나치게 유화적인 자세로 일관해 노조의 정치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