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부 교수
지금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주저되지만, 과거를 회상해 보면 낯선 도시에 대한 여행계획을 수립할 때 여러분들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핸드폰 속 지도에 내가 머물 곳은 어디인지 확인한 후, 점차 반경을 넓혀 일정에 따라 갈 곳을 표기하고 짧게 머무는 동안 이 도시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도시를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낯선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출발 전 일정과 도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기면 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낯선 도시에 대해 또는 본인이 사는 도시에 대해 머릿속에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을 도시학자인 케빈 린치는 인지지도라 명명하고 선명한 도시 이미지를 주는 곳이 살기 좋은 도시라 했습니다.
며칠 전 이곳에서 흥미 있는 경험을 했는데, 네 갈래 교차로 2개 방향에서 좌회전 금지 표지판이 있는 것입니다. 국내 교차로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네 방향에 거의 다 있는데 죄회전을 어떻게 하라고? 이유인즉슨 한쪽은 기존 1차선 좌측에 좌회전 차로가 2개 만들어져 있어 직진 차량과 이미 분리된 곳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좌회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전 후 도로 중간에 마련된 유턴구간을 통해 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교통체계입니다. 이 도시를 사용하는 설명서가 없던 낯선 나에게 발견된 작지만 파편적인 이런 공간을 운전했다면 우왕좌왕하거나 자칫 자동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 불안정으로 3기 신도시들이 발표되었고 작년엔 개발계획고시가 완료되면서 대지 조성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전분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들은 누가 만들까요? 도시설계가라 불리는 전문가들이 행정가와 함께 도시를 만들게 되는데, 비전문가들은 전문가들이 도시를 만들지만 1기 또는 2기 신도시를 돌이켜 볼 때 특색없는 똑같은 도시만 만들어 오히려 전문가에 의해 망쳐진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문가들이 도시 이용자들이 겪을지도 모를 낯섦과 불편함이 없는지 세세하게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며 설계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경험이 없거나 수치와 통계를 중시하며 도시를 만들다보니, 결국 사람들에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도시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고 봅니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최근 도시는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시에 남기는 자취인 자본, 권력, 성, 노동, 전쟁 및 문화가 도시 얼굴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시가 만들어진 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발생한 동인으로,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도시의 용도와 기능을 배치하는 작업은 설계가라 불리는 누군가가 계획하고 설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인은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살아갈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들의 도시를 변형해 살게 된다는, 즉 도시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도 도시에 영향을 주며 도시가 변화해 나간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필요한 신상 전자제품이나 공산품을 구매했을 경우 사용법을 어떻게 아시나요? MZ세대들은 유튜브 또는 감각적으로, 나머지 세대는 아마도 동봉되거나 인터넷에 게시된 사용설명서를 통해 숙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살게 될 신도시 또는 낯선 도시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시가 난 토지이용계획도면 또는 지구단위계획도면을 본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핸드폰 지도와 두 발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오감을 통해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인지지도를 서로 매칭시키다 보면 파편적으로 보이는 도시 골격과 기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총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이것은 도시를 아주 잘 사용하게 되는 사용설명서가 될 것입니다.
도시설계가들은 도시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도시를 이용할 수 있는 사용설명서를 제공하기 위해 걷기 편한 도시를 만들어 도시 이미지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하고, 도시 사용자는 걸어다니면서 도시의 구석구석을 이해한다면 도시를 더욱 잘 사용하기 위한 올바른 도시사용설명서를 얻게 될 것이라 봅니다. 더불어 걷기 편한 도시는 미래세대를 위해 더욱 살고 싶고, 살기 좋은 탄소중립도시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