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원 사장 "우군으로서 경쟁" 투자목표 직접 밝혀
시장 내 협력 여지 남겨두는 전략
IPO 혹은 M&A…키옥시아 향방 따라 낸드사업 전략 갈릴 듯
SK하이닉스가 2018년 투자한 일본 반도체업체 키옥시아 지분 투자로 지난해 연말까지 2조 원 가까운 평가 이익을 본 것으로 관측된다.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통해 빠르게 낸드사업을 강화해나가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상황상, 향후 키옥시아와의 관계가 낸드사업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은 6일(현지시간) 진행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기자간담회에서 키옥시아 투자에 대해 “작년 총결산을 해봐야 되겠지만, (키옥시아 지분은) 6조 원 가까운 장부가치로 대략 2조 원 조금 못 미치는 이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당시 키옥시아의 전신인 도시바메모리 지분에 4조 원가량을 투입했다. 항목별로는 베인캐피탈이 조성하는 펀드에 유한책임사원(LP) 자격으로 2조6371억 원, 전환사채(CB) 인수에 1조2789억 원이다. 약 4년 만에 2조 원 못 미치는 평가 이익이 발생한 셈이다. 노 사장은 이에 대해 “재무적 투자 관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도 덧붙였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극적인 이익이 발생한 건 아니다. 2020년 연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말 회사가 보유한 키옥시아 특수목적 법인 지분과 전환사채(CB) 총액을 5조9467억 원 수준이었다. 노 사장 말대로 작년 연말 기준 키옥시아 지분 가치가 6조 원이 조금 안 된다면, 전년도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다.
다만 시장에서 주목한 건 노 사장이 직접 밝힌 키옥시아 투자 이유다. 노 사장은 키옥시아 투자에 대해 “낸드시장의 주요 플레이어(키옥시아)가 SK하이닉스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투자 이면에 숨어있는 내용”이라며 “돈을 버는 것보다는 현재 키옥시아와 하이닉스가 우군으로서 경쟁해나가고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 투자의 큰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단기적 지분 가치보다 장기 투자를 통해 얻을 게 더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키옥시아 인수, 키옥시아 기업공개(IPO) 시도가 이어지며 시장에선 SK하이닉스의 투자 목적과 엑시트 시점을 두고 유독 여러 추측과 전망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딜과 밀접한 인물이 공식 석상에 등장해 직접 의문을 풀어준 셈이다. 노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인수ㆍ합병(M&A) 전문가로, 키옥시아 지분 투자 결정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키옥시아 투자자로서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건 지난해 이미 증명됐다. SK하이닉스가 10조 원 규모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진행하며 대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키옥시아를 활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SK하이닉스는 지분에 손을 대는 대신 유보 현금을 활용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낸드 기술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러나 인수 이후 10년간 의결권 15%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한 규정 때문에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엔 개입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의미 있는 기술 교류가 오가기는 어려운 관계다.
이때 "우군으로서 경쟁한다"는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 사장 발언에 대해 "반도체 산업에서 미세화 정도나 기술 난도가 높아지며 단독으로 기술개발을 해나가기는 어려운 시장환경"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쟁사라고 해도 특허나 개발 부분에서 적을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은 아니다. 경영권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투자자로 들어가 있는 것이니, 시장 내에서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정도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 키옥시아의 M&A 혹은 IPO가 성사된다면, SK하이닉스의 낸드사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업사이클로 전환된 시점에 키옥시아가 IPO에 성공하게 되면 지분 평가 이익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베인캐피털의 펀드출자자(LP) 형태로 투자된 3분의 2 지분은 매각하고, 별도 지분 3분의 1을 장기 투자 방식으로 가져가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 일부 평가이익을 현금으로 가져가되, 우군으로서의 경쟁 구도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앞서 SK하이닉스 측에서도 이 같은 전략을 고려했단 사실을 지난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직접 밝힌 바 있다.
반면 웨스턴디지털과의 M&A가 성사된다면 낸드시장 3강 체제가 구축돼 경쟁 가속화가 불가피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 낸드 시장 점유율은 13.6%로, 인텔 점유율(5.9%)을 합치면 근소한 차이로 낸드시장 2위인 키옥시아(19.5%)를 넘게 된다. 그러나 WD(13%)와 키옥시아의 M&A가 성사된다면, 양사 점유율은 32.5%까지 올라 시장 1위인 삼성전자를 넘보게 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의 관계는 향후 글로벌 낸드시장 구도 변화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며 "키옥시아와 SK하이닉스, WD 등 주요 낸드 플레이어 간 관계가 주요국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은 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