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본보기식 고강도 처벌"
공공 수주·민간정비 유치 '빨간불'
화정아이파크 입주자 피해 보상책
구체적 사고수습 방안 내놓지 않아
"보여주기식 사퇴" 비판 목소리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7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책임을 지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내려놨다. 광주에서만 채 1년 만에 두 차례의 인명사고를 내면서 사실상 ‘불명예 퇴진’한 셈이다. 이로써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맡은 지 23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투데이 취재 결과,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로 현대산업개발은 현행법상 최장 1년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회장 사퇴’와 ‘완전 철거 후 재시공 가능’ 등 초강수를 둬 사고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건설사 부실공사 등에 따른 처벌 근거는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과 건설기술진흥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따른다.
건산법에 따르면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 관련 조항(제82조 2항)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법인 등록 말소나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건설사업자의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또 영업정지를 갈음해 그 위반 공사 도급금액의 30%에 상당하는 금액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번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총 공사비는 1237억 원으로, 해당 기준을 적용하면 최대 40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법인 등록이 말소된 사례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1994년 10월 서울 한강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인해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낸 후 당시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법인 등록 말소 처분을 받았다.
또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부실공사에 대한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안전점검 의무, 품질 검사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장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 산안법 상 중대재해(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최장 6개월 영업정지가 가능하다. 아울러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앞으로 진행되는 공공사업 수주나 민간 정비사업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업계에서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받으면 대형건설사라도 경영 손실을 버티기 힘들다고 본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는 영업정지 처분 대신에 대부분 과징금 부과 형식으로 징계를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신축 아파트 붕괴라는 전례 없는 사고인 데다 6명이 실종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어 중징계인 영업정지 처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이날 긴급 당정 협의를 열고 광주 사고 관련 감독을 현대산업개발 본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지난해 광주 학동 재개발 건물 붕괴사고 이후 회사 내부 안전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임을 확인시켜준 꼴이라 기업 소유주인 정 회장의 2선 퇴진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신축 아파트 붕괴라는 대형 사고를 낸 점도 정 회장 퇴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가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대형 인명사고를 낸 만큼 시민단체와 각종 노동자 협회는 ‘본보기’식 고강도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 비판여론이 커지고 경영진 책임론이 불거지자 여론 진화를 위해서라도 정 회장 퇴진이 불가피했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현대산업개발 회장 사퇴가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현대산업개발은 하원기·유병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정 회장 역시 HDC그룹 회장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사고 수습 방안이나 실종자 수색 방안, 입주 예정자 피해보상책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 회장은 “경영자로서는 물러나지만, 대주주의 책임은 다할 것”이라며 “고객과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책임 회피성 사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