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썸씽로튼' 인터뷰…"뮤지컬 첫 도전작 '지킬 앤 하이드' 떠올라"
"뮤지컬을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 중 하나예요. 지금은 뮤지컬을 너무나도 사랑하죠. 노래도 부를 줄 몰랐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배우 강필석에게 뮤지컬 '썸씽로튼'은 특별하다.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어서만은 아니다. 데뷔 21년 차를 맞은 그에게 도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 그런 그가 재연 '썸씽로튼'에서도 닉 바텀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그는 "화가 날 정도였다"며 '썸씽로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초연 때 이 작품을 못할 뻔 했어요. 고사했거든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다고 했는데 춤도 많이 부담스러웠죠. 오래도록 연습실에서 나오지 못했어요. '더 일찍 준비했다면 더 즐기면서 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고, 부담감과 즐거움이 공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부담으로 느껴졌던 춤을 출 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죠."
두 번째 만남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초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차례 공연이 중단되다 아쉬움 속에 계획한 일정보다 빠르게 막을 내린 바 있다. 올해는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내듯 4월 10일까지 공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 시즌엔 팬데믹 초기라서 절반 정도밖에 공연되지 못했어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 공연이 멈추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제작사도 그렇고 배우들도 안타까워했어요. 재연을 바랐죠. 지금도 완전히 나아진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좋은 작품을 많은 분이 함께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는데 이뤄지게 돼서 기쁩니다."
다음은 강필석과 일문일답.
- '썸씽로튼' 속 닉 바텀을 연기할 때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궁금하다.
"호흡도 빠르고 이끌어가는 부분이 많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춤을 춰야 해요. 그런데 사실 힘이 들진 않아요. 체력적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지만, 이야기가 밝고, 어두운 부분도 밝게 풀어나가는 극이잖아요. 결말도 밝게 끝나고요. 그래서인지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끝나고나면 힘든지 모르겠어요. 기분 좋은 뭔가를 하고 나온 듯한 느낌이에요. 집에 갈 때도 기분 좋게 가죠. 관객들이 소리 내서 웃지 못하지만, 온 힘을 다해 박수쳐주시는 것도 느껴지죠."
- 가장 킬링포인트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너무 많은데요. 하하. 대본과 음악이 너무 잘 쓰였어요. 필요 없는 음악, 허투루 지나가는 신이 하나도 없다는 게 놀라워요. 이상할 수 있는 발상도 과하지 않게 잘 녹여낸 것 같아요. 사실 실제 뮤지컬이 극의 내용처럼 탄생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와 닿는 것은 저도 뮤지컬이란 장르가 생소했을 때 '왜 연기하다가 갑자기 노래하지?'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하. 한 배역에 집중이 올인 되고 나머지 인물이 지나가는 인물로 쓰이지도 않았어요. 제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육현욱 배우가 포문을 열어주는 것도 정말 좋고요. '썸씽로튼'은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닿아 굴러가는 작품이에요."
- 강필석이 만약 닉 바텀과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면 뮤지컬에 도전했을까? 닉 바텀처럼 팔랑귀인가?
"글쎄요. 제는 팔랑귀가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열어놓았지만, 어렸을 땐 고집도 정말 센 편이었죠."
- 고집이 얼마나 셌길래.
"예전엔 치밀할 정도로 계획을 많이 세웠어요. 지금은 그게 독이라는 걸 깨달았죠. 한 대사를 그냥 넘어가질 못했어요. 심지어 상대의 연기까지도 생각해야 했죠. 제 안에 너무 많은 게 들어와 버리는 거예요. 사실 상대 배우는 제가 생각한 10개 안에서 하는 게 아니라 11개를 찾아서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러니 자꾸 답답해졌어요."
- 극복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2011년쯤 '레드'라는 작품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때 '레드'를 만든 연출가 인터뷰를 읽었어요. 오래도록 최고의 위치에 계시는 분이었죠. 질문이 '당신이 계속 최고의 정상에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와 같은 것이었는데, 답변이 제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였어요. '불안함'이라고 답한 거죠. 뒤통수에 망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는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고, 그걸 자꾸 연습이라는 것을 통해 안정시키려고 한다. 안정화할수록 재미가 없어진다'는 식의 말이 이어졌죠. 제 얘기 같았어요. 불안한 상황이 싫어서 제거하려 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대본만 계속 보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연습실에 가봤죠."
- 엄청난 도전 아닌가.
"맞아요. 그냥 한 번 맞닥뜨려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제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니 상대방을 10이 아닌 200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상대를 계속 살피지 않으면 다음 대사를 캐치할 수 없으니 집중도도 높아졌고요. 그렇게 하고 나니 매번 조금씩 보이는 게 다른데도 공연할 때마다 불안한 게 아니라 해소가 되는 거예요. 실수하면 잠도 못 잤는데, 실수해도 괜찮아졌고요. 왜 선배들이 '연기의 답은 상대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깨달았어요. 연기도 더 재밌어졌어요. 이젠 상대배우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거든요."
- 다시 돌아가서, 강필석이라면 도전을 하겠는가.
"네, 도전할 것 같아요. 제가 갑자기 프로레슬링 선수를 하겠다는 식의 도전은 할 수 없지만요. 하하. 하지만 10점 만점에 5점짜리 정도에서 가능한 도전이 아니라 선이 없는, 굉장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 강필석이 셰익스피어로 나와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상상은 안 되는데 재밌었을 거 같아요. 서경수라는 배우가 표현하는 셰익스피어는 원작하고 달라요. 그 친구는 정말 영리한 배우 같아요. 서경수 배우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라는 작품으로 처음 봤어요. 경수 배우는 오디션을 봐서 앙상블로 들어왔죠. 정말 철없고 정신없는 친구였는데, 이번 작품에서 만나게 된 거예요. 그 경수가 그 경수라는 걸 알고 놀랐어요. 너무나도 잘해오고 있었던 거죠. 팬이 됐어요. 호흡을 적절하게 가지고 놀더라고요. 그게 되게 어려운 거예요. 셰익스피어가 호흡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운 역이거든요. 사실 정말 가성비도 좋은 역할이에요. 하하. 1시간 동안 등장을 안 하는데 저희는 계속 셰익스피어 얘기를 하거든요. 매력적인 역할을 저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긴 하네요."
- 첫 뮤지컬 도전작이 '지킬 앤 하이드'였다.
"저는 뮤지컬을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 중 하나예요. 지금은 뮤지컬을 정말 많이 사랑하게 돼버렸죠. 뮤지컬을 제가 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말이에요. 지금 떠올려보면 감사한 분이 계세요. 대학교 4학년 때 뮤지컬 앙상블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교수님께서 '너는 꼭 노래해야 하는 목소리다'라고 하셨죠. 그 교수님께서 노래를 무료로 알려주시기도 했어요. 졸업 후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지킬 앤 하이드' 초연에 추가로 합격한 거죠. '지킬 앤 하이드' 초연도 제가 뮤지컬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힘이었어요. 뮤지컬을 잘 몰랐을 땐 갑자기 연기하다 춤추고 노래하는 장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지킬 앤 하이드'를 하면서 충격이었죠. 작품이 정말 드라마틱한 거예요. 그때 25살의 조승우란 배우도 만나게 됐고요. 제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배우였죠. 노래가 대사처럼 들리도록 하는 배우를 본 거예요. 너무 많은 것들이 소름 돋도록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때 결심했죠. '그래, 나는 이걸 해야겠다'고요."
- 닉 바텀은 동생과 극단,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 강필석이 책임져야 하는, 책임지고 싶은 존재가 있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같아요. 다만 나이가 한살 한살 들면서 그 폭이 조금씩 넓어졌어요. 그 전엔 가족, 나, 나의 여자친구 정도였거든요. 지금은 뮤지컬을 하는 후배들까지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죠. 포괄적인 책임감이지만요."
- 데뷔 21년 차를 맞아 달라진 점이 있나.
"정말 오래됐네요. 하지만 여전히 똑같아요. 안 힘들 때도 됐는데 작품마다 힘들어요. 창작 작품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다 쓰인 대본을 하는 게 아니라 창작 과정부터 함께 고통을 겪을 때가 많아요. '관객이 여기까지 호흡을 따라올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하죠. 이 부분은 아직 타협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완벽한 첫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요. 그렇게 작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20년이 지나가버렸네요."
- 현재 뮤지컬 '곤 투모로우', '썸씽로튼' 무대 동시에 오르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의무감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저랑 김재범, 박영수는 초연을 함께 한 멤버예요. 상징적으로 몇 회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다른 여타의 작품이었으면 저도 안 했을 수도 있는데, 연출님, 제작사에 대한 의무감이 있었거든요. 연말에 대극장에서 할 분위기의 작품은 아닌데도, 어떻게든 끊임없이 다시 한번 올려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 걸 알고 있기도 했고요. 조금이라도 끝까지 함께하는 느낌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 올해 계획은?
"운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몸짱'까진 아니더라도요. '썸씽로튼'하면 유산소 운동이 저절로 돼요.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무대에 서고 싶어도 할 수 없잖아요. 배우도, 관객도 모두 건강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