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경영책임자 범위ㆍ근로자 과실 처벌 면책조항 부재ㆍ적정 예산 기준 모호 비판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기업들에 법 시행에 앞서 이행 방안을 쉽게 풀은 해설서 등을 배포했지만 경영계는 모호한 조항으로 인해 기업 경영 활동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는 우선 중대재해법에서 정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 주체인 경영책임자 범위가 애매모호하고, 하청업체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해설서에서 경영책임자를 명확히 정의했다고 반박한다. 해설서를 보면 경영책임자는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와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통상 대표이사와 안전담당 이사를 경영책임자로 규정한 것이다.
해설서는 안전담당 이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표이사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이들 모두 처벌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복수의 대표이사가 있는 경우 회사 내에서 직무, 책임과 권한 및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해당사업에서 최종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청업체(수급자)의 원청사(도급인) 책임과 관련해서는 원청사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하청업체(상시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 가령 원청사가 관리하는 현장에서 안건보건 조치 불이행으로 작업하는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경영책임자에게 법이 적용된다. 다만 이 경우 원청이 하청의 시설·장비·장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했는 지가 입증돼야 하는데 향후 이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경영계에서는 근로자의 과실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 안전보건 조치를 의무를 다한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면책 규정이 없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14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법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4.2%가 중대재해처벌법 중 가장 시급히 개정해야 할 사항으로 ‘고의·중과실이 없는 중대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규정 마련’을 꼽았다. 정부는 이 경우엔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법에 따른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다했다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경영계는 근로자의 잦은 실수로 중대재해가 반복되면 기업에 안전보건관리체계 이행 상의 결함이 있다고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려 처벌을 가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경영계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로 명시한 ‘적정한 예산’ 투입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자칫 적정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위반이 될 수 있는 만큼 해당 용어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예산 기준은 없지만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면 된다고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경영계에서 요구하는 법 개정 가능성에 대해 "법이 시행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개정 검토는 없다"면서 "대신 기업들이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잘 구축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설서 활용 유도, 컨설팅, 기술 재정 지원 등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해당 법의 불확실성이 크고,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잇따를 수 있어 산업 현장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해설서는 핵심 쟁점에 대해선 피해가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례별로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들로서는 법령이 가지고 있는 불명확성이 매우 커 의무주체 및 의무이행 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횡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점에 유의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