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밥 덕에 단백질ㆍRMR 전성시대…소비자들이 취향 찾는 '미식' 활발해지면 산업도 혁신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
프랑스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말이 현대에 와서 변주된 문장이다. 한 개인이 먹는 것들이 곧 취향과 계급, 건강상태까지 드러낸다는 이 도발적인 문장은 코로나19 시대에 다시금 도전받는다. 코로나가 소비행태에 영향을 줬듯이, ‘먹는 행위’ 역시 라이프스타일, 산업구조, 시대적 트렌드까지 긴밀하게 얽혀있어 오롯이 개인의 선택으로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음식을 중심에 두고 식재료의 근간이 되는 농업부터 식품의 제조와 조리, 외식, 급식, 나아가 판매까지 푸드체인의 구석구석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 음식 산업은 소비자의 문화, 심리,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는 문정훈(49)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겸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이하 푸드비즈랩)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문 교수는 학자로서 연구는 물론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식품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농가까지 머리를 맞대고 푸드비즈니스 실무에 손을 뻗칠 정도로 자타공인 '푸드 전문가'다. 누구보다도 음식에 ‘진심’인 문 교수를 만나 코로나 이후 식품ㆍ외식 산업의 트렌드부터 최근 점화된 치킨 논쟁, K푸드의 향방을 들어봤다.
역병이 창궐한 지난 2년 식품업계와 외식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문 교수식 표현을 빌리자면, 코로나는 HMR 초창기 시대인 ‘집밥1.0’ 시대를 거쳐 밀키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집밥2.0’ 시대를 열었다. 식품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았지만 매장 중심의 외식업은 매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문 교수는 외식업이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모델로 레스토랑 간편식(RMR)을 강조한다. RMR이 단순히 식당에서 만든 음식을 밀키트화한 제품이 아닌, 고객 발걸음을 매장으로 유도하는 후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 등 총제적인 경험을 극대화하고, 소비자들은 RMR을 먹으며 매장에 대한 판타지를 키우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RMR을 배달, 부수입 정도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식당과 RMR 투트랙으로 운영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RMR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집에서 즐기고, 진짜 최상의 서비스는 매장에 와서 하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RMR을 먹어도 언젠가는 돈을 모아 그곳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RMR이 고객을 매장으로 유도하는 상품 역할을 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RMR은 결국 외식ㆍ제조ㆍ유통업체 3자 협업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외식업체들이 가장 약한 부분이 유통이다. 마켓컬리처럼 전국 배달망을 갖춘 온라인 플랫폼, 제조업체가 가진 대량 생산 및 제조 기술, 외식업체의 레시피가 만난 협업 체계가 RMR 모델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로 글로벌 집밥족이 늘면서 K푸드 열풍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문 교수는 K푸드에 대해 "한마디로 방탄소년단(BTS)이 먹어주면 끝"이라면서 "결국 K푸드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 일부로 가야한다. 음식에 대한 선택은 라이프스타일 등 수많은 영향을 받는다. 전혀 모르는 음식인데 건강에 단지 좋다는 이유로 먹을 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인데 'BTS의 지민이 떡볶이를 먹었다', '유튜브에서 매운맛 챌린지를 하더라' 라는 열풍이 불면 K푸드도 자연스럽게 같이 가는 구조"라면서 "K푸드는 아직도 초기단계라고 본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여력이 있다. K푸드가 잘 되려면 K컬처 일부로 녹는 통합마케팅(IMC)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문 교수가 눈 여겨 보는 차기 K푸드 종목은 뭘까. 그는 한국식 반찬문화를 꼽는다. 문 교수는 "반찬문화는 한식문화의 끝판왕이다. K만두도 잘 나가지만, 사실 만두는 독일, 스페인에도 다 있다"라면서 "한상차림의 반찬문화는 먹는 순서, 다양한 조합에 대한 이해, 학습을 필요로 한다. 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식품제조 역량뿐만 아니라 외식업 서비스 역량까지 요구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올해 식품시장의 새로운 트렌드 핵심 키워드로 단백질을 꼽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수화물 대신 단백질로 칼로리를 채우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푸드비즈랩이 발간한 ‘2022 푸드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0년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에너지 공급량 중 탄수화물은 75%에서 50%대로 감소한 반면, 단백질과 지방은 각각 11.8%에서 14.7%, 13.1%에서 34.6%로 늘었다.
문 교수는 “코로나 이전부터 탄수화물 소비를 줄이는 현상은 있었지만, 단백질이 부흥하는 데 코로나가 강력한 기폭제가 됐다”라면서 “기존 육류 단백질 위주의 식품 섭취뿐 아니라 환경, 지속가능성 등의 이유로 수산 단백질, 식물성 단백질로 소비가 옮겨가면서 단백질은 더 눈여겨봐야 할 시장이 됐다”라고 말했다.
3色 단백질 시장의 부흥 조짐은 최근 식품기업들의 행보에도 반영됐다. 김치 담그던 대상, 참치 잡던 동원F&B가 육류 관련 기업을 사들이거나 대체육 개발에 나서는 등 고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나섰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생선구이’ 생산라인을 2배 확대해 수산물 HMR(가정간편식) 사업을 본격화했다.
지속가능성 이슈가 떠오르면서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그는 식물성 단백질 중에서도 대체육보다는 음료의 성장성을 주목한다. 문 교수는 “대체육 관심도 늘어난다지만 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완전히 없애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식물성 소재 개발은 결국 음료 쪽으로 많이 가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도 대체 단백질 시장 움직임을 보면 대체 음료 쪽이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한국인들은 두유 문화에 익숙해 ‘두유’ 자체는 국내에서 진부한 시장이란 시각이 있었지만, 최근 등장하는 오트 밀크, 아몬드 밀크에 집중하면 세련된(fancy) 시장으로 탈바꿈된다”라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게 스타벅스 오트라떼”라고 덧붙였다.
문 교수가 이끄는 푸드비즈랩은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노는 세상’을 모토로 삼는다. 음식 산업에 대한 이해는 결국 인간의 심리, 문화 등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는 그는 소비자들이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소비자들이 까다로워지면 산업에 강한 요구가 들어오면서 혁신이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최근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촉발한 '치킨논쟁'에서는 어떨까. 문 교수는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산업 구조를 우선 지적한다.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 니즈에 맞춰 같은 양의 사료를 먹이더라도 살이 더 빨리 찌는 닭을 찾는 등 생산자가 수익성,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결국 모든 닭의 품종이 획일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농업, 축산업 등 산업구조가 획일화돼 있다는 게 문제다. 대형 생산자 혹은 유통업체가 품질기준을 정해놓고 다 같이 경쟁하는 구조"라면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봐도 세분된 니즈를 추구하는 소농들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소비자라고 문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소비자가 바뀐다는 건 내 용도와 입맛에 맞는 식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미식의 시작이다. 꼭 비싼 것만 먹는 게 미식이 아니다"라면서 "호기심을 갖고 마치 내게 어울리는 옷이 뭔지 고르는 것처럼 음식 역시 내 취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구조의 획일성을 깨뜨리고 세부 시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최근 토마토, 설향 딸기 등 취향을 찾아가는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식품산업계에 더 크고 더 많은 요구를 하는 셈이고, 이는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노는 미래를 요구하는 것과 연결된다. 푸드비즈랩의 목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