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을 위한 101] 신체척도를 이용한 도시 즐기기

입력 2022-0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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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부 교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필자는 낯선 도시 이곳저곳을 걸으면서 생경한 장소가 주는 느낌과 풍광을 즐기고 있습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설물과 장소가 도시민들의 행동과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 신체를 이용한 크기 측정은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즉흥적, 무작위적, 직감, 상상력 등 감각적 측면이 강하지만,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의 신체 크기나 행동에 기반해 디자인한다면 그것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대 신전의 지붕과 기둥 등에 사용된 황금비율(1.618) 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빈치 인체 비례도가 이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창조적 특징을 가진 설계 과정에 이러한 인간척도(human scale)가 왜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봅니다만, 개인이 양팔을 벌릴 때 만들어지는 동그란 원은 대략 본인의 키 크기랑 비슷하고 다른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 사적 영역이 됩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방역 측면에서 사회적 거리 2m 유지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오래전에 에드워드 홀이 ‘숨겨진 차원’(1966)에서 공공 생활을 위해서는 일정 거리가 필요한데 그 거리는 120~360㎝로 사회적 거리라 하였습니다. 이 용어와 간격은 우연인지 몰라도 코로나 블루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인간척도를 이용해 설계하려는 노력은 최근 3기 신도시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과거 1·2기 신도시처럼 공동주택 블록 크기를 200~300m의 대블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80~130m 내외 크기의 중소규모 블록을 중심으로 걸음걸이로 약 600보 5~6분 정도 소요되는 반경 400m의 보행 중심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시의 블록이 작을수록 사람들이 다니기가 훨씬 수월하고 길을 선택할 자유도도 커지며, 이 정도 거리를 걷게 되면 한 번 정도 쉬기 때문에 반경 400m라는 인간척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도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SOC(사회간접자본)를 10분 또는 15분 정도 내외로 걸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프랑스 파리에서는 15분 동네 만들기, 국내에서는 서울과 부산에서 10분 동네 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10분 동네라면 반경 800m로 1200보 정도가 되는 경계를 말하며, 걸음걸이를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걷기 좋으면서 보행권에 생활 SOC가 잘 갖추어진 도시가 전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독자분들은 본인의 평균 보폭이 얼마쯤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린에서 깃대가 꽂힌 홀에 공을 넣기 위해 발걸음을 통해 거리를 파악하기에 대부분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한국인의 경우 약 76㎝라고 알려졌고 일반적으로 본인 키에서 100㎝를 빼면 됩니다.

서울 신촌에는 2014년에 개통된 연세로대중교통전용지구가 있는데 기존에 각종 시설물들이 보행로를 막고 있어서 유효보도폭이 1~2m 정도로 매우 복잡하였는데, 전선지중화 및 보도폭 확장으로 지금은 넓어져서 도시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얼마나 변했기에 그런지 눈으로 살펴보면서 제 보폭 약 70㎝로 측정해 보니, 좁은 곳은 6걸음 약 4m 넓은 곳은 11걸음 약 8m 정도가 되었습니다. 강남 테헤란로에 설치된 넓은 보행로를 제외하면 아마 서울에서도 보기 드물게 넓은 보도를 가진 곳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본인 신체뿐만 아니라 도구를 이용해 도시 간의 거리를 측정해 보는 것도 도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자전거를 이용해 도시와 도시를 이동해 보면 자동차나 대중교통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리감을 가지게 되는데요, 철판으로 둘러싼 차 안에 있을 때보다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면서 움직이다 보면 아주 먼 곳에 있다고 느꼈던 도시들이 생각보다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도로를 따라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게 되는데, 일부 도시는 자전거 도로가 접근성이 훨씬 좋아 이동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졌던 심리적 거리감도 줄여줍니다. 택시로 20분 지하철로 30분 소요되는 곳을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자전거를 이용했던 기억도 있고, 그런 이유가 공유자전거 이용을 증가시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도시디자인 101’(2018)의 저자 매튜 프레더릭과 비카스 메타는 거리, 광장 등을 디자인할 때, 유사한 공간을 방문하여 치수를 직관적으로 가늠해 본 후 공간을 측정해 예상한 것과 비교해 보는 노력을 권하고 있습니다. 도시민들도 365일 24시간 살아가는 도시를 좀 더 재미있고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신체가 가진 평균 보폭, 양팔 길이와 같은 신체척도와 자전거를 측정 도구로 하여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크기 및 거리감을 느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시에 익숙해지고 나의 신체척도를 고려할 때 잘된 곳은 어디인지 그렇지 않은 곳은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 때때로 외롭고 삭막하기만 한 도시 생활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며 향후 좀 더 좋은 도시공간을 만들어가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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