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미-러의 대립

입력 2022-0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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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연구위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의 긴장 고조는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천연가스는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의 약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고, 전력 생산의 약 20%를 담당한다. 러시아는 난방, 전력 및 산업 생산에 사용되는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40%를 파이프라인으로 운송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으로의 수입 전환, 해상풍력 확충, 유럽-북아프리카 수소 허브 구축 등의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러시아에서 독일로 향하는 노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의 사용 승인을 앞두고 미국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은 군사적인 대응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노드스트림2 프로젝트의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두 진영 사이의 첨예한 갈등은 유럽 에너지 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유럽 동맹국들이 천연가스의 대체 공급원을 찾는 것을 돕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은 최대 용량으로 가동되고 있다. 2021년 12월 미국 LNG 출하량의 약 절반이 유럽 시장의 가격 상승에 힘입어 유럽으로 향했다. 당초 이 물량은 가뭄으로 수력발전이 곤란해져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한 중국으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유럽의 급박한 사정 때문에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급 중단 위협에 맞서 미국과 유럽이 의지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 유사 시 유럽 에너지 시장은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은 러시아의 공급 축소분을 상쇄할 만큼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LNG 공급량의 3분의 2는 구매자가 고정된 장기 계약에 따라 판매된다. 공급업체 중 일부는 러시아발 공급 위기가 악화될 경우 여유분의 LNG를 유럽으로 선적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이 물량에 부과될 프리미엄 가격은 유럽 소비자들이 현재 지불하고 있는 가격보다 훨씬 높다. 다른 문제는 여유분의 LNG가 유럽으로 가더라도 중부 및 동부 유럽에는 LNG 수입을 위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09년 위기 이후 건설한 재기화 플랜트는 대부분 서유럽에 집중되어 있고, 추가 건설에는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수 년의 시간이 걸린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가스 수출기업과 유사 시 유럽의 구매자에게 추가로 물량을 할당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1월 31일에는 백악관에서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의 국왕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아울러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천연가스 생산업체들과 협력하여 유럽으로 일부 물량을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업계 분석가들은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러시아의 공급 축소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충분한 대체 물량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백악관의 노력을 포함한 어떤 해결책도 고통스러운 비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서방의 경제 제재와 외교적 보복에 맞닥뜨릴 경우, 에너지 가격은 더욱 치솟고 인플레이션은 악화되며,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는 저해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왜냐하면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높은 에너지 의존도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는 해당 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막대한 재정적 비용을 초래하는 동시에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줄이려는 유럽의 단합을 촉발시키는 상황은 부담스럽다. 문제는 단기간의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려는 푸틴의 의지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해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과 유럽의 능력을 능가하는지 여부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푸틴은 합리적 가격의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유럽에 필수적이며, 신재생 에너지로 쉽게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신시키려 한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은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것이다.

2009년 유사한 위기 때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20일 동안 중단한 후 유럽은 미국을 포함한 대체 공급처를 물색했고, LNG 재기화 설비 29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그러나 결국 모스크바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데 실패한 경험이 있다. 유럽은 2009년과 이번 겨울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 미래 에너지 안보 전략을 재구축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다. 현재 유럽에는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한 달 분량의 재고 가스가 있다. 만약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고 대체 공급처를 찾기 위한 서방의 외교적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미국과 유럽의 선택지는 좁아지고 크렘린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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