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영화감독이 ‘기생충’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마틴 스콜세지 할리우드 감독의 말을 인용해 남긴 명언이다. 나다움이 곧 가장 특별하다는 뜻의 이 말은 브랜딩에도 적용된다. 자신만의 개성에 올곧이 집중해 남들과 차별화하는 것이 브랜드의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그 자체로 ‘퍼스널 브랜드’가 된 이가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인생 절반 가량을 패션 외길을 걸어온 박영일 신세계인터내셔날 라이브커머스PD가 그 주인공이다.
박영일(32) PD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패션’ 그자체다. 중학생 때부터 패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그는 지금은 몸집이 커진 무신사, 힙합퍼 등 패션 커뮤니티에서 일찍부터 활동했던 트렌드세터이기도 하다. 박PD는 “요즘으로 치면 리셀러였다”라면서 “슈프림, 나이키 등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중학생 때부터 했다. 지금만큼 리셀이 활성화되진 않던 때라 정보의 비대칭성 덕분에 최대 3~4배 시세차익을 보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옷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패션 대기업에 입사했다. 2016년 신세계인터내셔날에 공채로 입사해 패션MD로 일하게 된 그는 패션MD를 “패션 회사의 꽃”이라고 표현했다. 박 PD는 “MD 일은 브랜드 전반의 기획을 맡는다는 점이 재밌었다. 지금은 흔해진 ‘명품 컬래버’를 당시 이마트 PB(자체상표) 브랜드와 이태리 ‘라르디니‘ 대상으로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라이브커머스PD라는 신종 직업에 발을 담그게 된 것도 패션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 라이브커머스(라방)는 쉽게 말해 TV홈쇼핑을 온라인화한 것으로, 실시간 동영상으로 물건을 파는 것을 말한다. 박PD는 '라방'에 올릴 브랜드 제품 기획부터 방송 촬영, 편집, 매출 확인까지 전과정을 총괄한다. 패션 커뮤니티 활동, JTBC 예능 ‘효리네민박’ 출연 경험에 힘입어 사내 라이브커머스 TF팀에 발탁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에 없던 직업이라 고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박PD는 “보수적인 기업을 상대로 기획을 진행할 때는 ‘라이브커머스’ 개념 자체를 간부급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라고 털어놨다. 간곡한 설득, 꼼꼼한 기획서 등 일반적인 준비 이외에 돌파 비결로 그는 최근 출연한 MBC 예능 ‘아무튼 출근’을 꼽는다. 박PD는 “확실히 공중파 예능 출연 이후에 사람들이 알아봐 주더라”라면서 “협상력이 전보다는 약간 올라간 것 같다”라고 귀띔하며 웃었다.
개인 패션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취향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박PD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장사하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취향이 굉장히 세분화돼 있다. 나와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꾸준히 모아 패션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