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155 성장공약’(수출 1조 달러, 국민소득 5만 달러, 세계 5강 경제대국)을 신경제 비전으로 설정하여 ‘산업·과학기술·교육·국토의 4대 대전환’과 ‘공공·금융의 2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특히 ‘디지털 전환’에 중점을 둔 산업대전환 정책을 통해 200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역동적 혁신성장’을 화두로 내세우며 산업전략을 재편하여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디지털 데이터 인프라를 확충하며 기술혁신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도약적 경제성장을 추구함으로써 양극화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복지를 실현한다는 경제비전을 공표하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5개 분야에서 초격차 과학기술을 확보하고 삼성전자급 기업을 5개 만들어 5대 경제 강국(G5)에 들어가겠다는 ‘555 공약’을 선언하였다.
이와 같이 거대한 성장 담론에서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민간 시장과 정부 정책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듯이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서도 중소기업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전략의 일부분으로 부록처럼 첨부될 따름이다. 구체적인 중소기업 공약으로 거론되는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추진, 디지털 전환 지원, 기술력 우수 중소기업의 성장 지원, 실패 기업인의 재기 지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유도 등은 기존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주로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후보가 최근에 발표한 ‘복지공유제’는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의 복지제도를 이용하도록 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중소기업은 성장의 주역이 아니라 조연 취급을 받으며 지원과 복지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을 산업전략의 하위 부속품으로 취급하며 지원정책 관점에서 접근하는 편견은 매우 강고하여 정당이나 후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대선 공약의 저변에 뿌리 깊게 깔려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요 대선 후보들이 성장 공약으로 모두 ‘혁신성장’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혁신성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역대 정부의 단골 성장정책 메뉴이다. 그 이름이 신경제, 지식경제, 창조경제 등으로 다르게 변모했지만 본질은 다 같은 혁신성장이다. 현재의 문재인 정부도 소득주도성장과 더불어 혁신성장을 성장정책으로 추구한다.
이처럼 혁신성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 엔진을 미래 첨단 산업에서 찾기 때문이다. 디지털, 인공지능, 양자기술, 우주항공, 시스템반도체,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혁신 기술은 새롭고 멋지게 들린다. 대선 후보가 이런 첨단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성장 공약을 발표하면 유권자들에게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현재의 경제적 난관을 일거에 타개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인식된다. 여기에 전통산업의 중소기업은 끼일 자리가 없다. 주변에서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는 중소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여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공약은 밋밋하여 화제를 타기 어렵다.
대선 후보 캠프에서 공약을 설계하고 수립하는 전문가들은 주로 톱다운(Top-Down) 방식의 경제성장 모델을 신봉하는 경제학자와 산업정책가로, 중소기업을 성장의 디딤돌이라기보다 걸림돌로 폄하하고 단지 예산만 투입하여 지원하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을 성장의 견인차로 접근하는 공약은 절대로 나올 수 없다.
혁신성장의 공약에서 명분상 벤처기업을 주연으로 앞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실질적 주인공은 대기업이 된다. 미래산업에 대규모를 투자하여 수출과 고용을 이끌 수 있는 경제주체는 대기업 집단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누가 정권을 잡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혁신성장의 정책을 이행하려면 대기업 친화 정책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당과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대기업 총수와 경영자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성장 공약을 발표하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정치인들이 대기업 모임에서는 성장을 논하고 중소기업인들 앞에서는 지원을 약속하는 현실이 웃프기만 하다. 이런 방식의 혁신성장에서 중소기업은 종속적 단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양극화는 고착될 수밖에 없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엇비슷한 공약들에 ‘대전환’이니 ‘구조개혁’이니 하는 거창한 명칭을 붙여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