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비자심리지수 십여 년 만에 최저치
연준, 역사상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 제압한 적 없어
코로나19·공급망 붕괴 등 경험한 적 없는 변수 많아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데 이어 또 다른 핵심 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전망치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오판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경기침체를 초래하지 않고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노동부는 1월 PPI가 전년 동월 대비 9.7% 상승했다고 밝혔다. 시장 전망치(9.1%)를 상회해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12월 9.8%에 육박했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1.0%로,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변동성이 높은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도 전년 대비 6.9%, 전월 대비 0.9% 각각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PPI는 가뜩이나 치솟은 소비자 물가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커트 랜킨 PNC 이코노미스트는 “PPI는 기업에 대한 비용 압박을 의미한다”며 “소비자에게 전가돼 향후 상품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1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7.5% 급등해 40년 만의 최고치를 찍은 상태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1월 PPI는 생산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강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물가가 추가 상승할 요인도 산적하다. CNN 자체 분석 결과,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할 경우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10%를 돌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10% 물가상승률은 1981년 10월 이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수치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중단되면 유가가 12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잿빛 물가 전망이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의 핵심축인 소비 심리도 주저앉고 있다. 미시간대학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2011년 이후 약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 가계 순자산 감소 등이 겹친 영향이다.
시장의 관심은 연준이 내놓을 긴축 카드에 쏠린다. 인플레이션이 예상을 웃도는 만큼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미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오판한 연준이 경기침체를 초래하지 않고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1980년대 이후 현재와 같은 고물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붕괴된 글로벌 공급망 등 각종 변수들도 연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다. WSJ는 연준 역사상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제압한 적이 없다고 우려했다.
연준이 현 상황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고전적 방식인 기준금리 인상과 새로운 수단으로 꼽히는 양적긴축이 있다. 연준은 2020년 3월 이후 9조 달러(약 1경774조 원)에 달하는 채권을 매입했다. 이를 축소할 가능성이 큰데 시장에 몰고 올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시장은 지난 20년 동안 연준의 금리 카드에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