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 도핑 양성 반응 사실이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선 러시아 ‘피겨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최악의 부진 속에 눈물로 경기를 마쳤다. 도핑 스캔들에 걸려 넘어진 발리예바의 러시아 귀국 후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발리예바는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7개의 점프 요소 중 5개의 점프를 실패하고 최종 4위에 그쳤다.
발리예바는 첫 번째 점프인 쿼드러플(4회전)부터 흔들렸다. 회전축이 흔들리면서 쿼터 랜딩(점프 회전수가 90도 수준에서 모자라는 경우) 판정을 받았다. 두 번째 과제인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에서는 착지 실패로 넘어졌다.
실수는 계속됐다. 세 번째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트리플 플립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하려다 첫 번째 점프 착지에서 넘어졌다. 이어진 트리플 루프 점프를 겨우 성공하며 이날 처음 클린 점프를 했다.
당황한 발리예바는 가산점 10%가 붙는 후반부 첫 점프인 쿼드러플 점프를 시도하다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지막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점프에서도 착지를 제대로 못 했다.
연기를 모두 마친 발리예바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치며 눈살을 찌푸렸고,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숙였다. 발리예바는 점수를 확인하는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 앉은 뒤 점수가 나오기 전부터 최악의 결과를 예견한 듯 눈물을 쏟았다.
발리예바는 프리스케이팅에서 141.93점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세계 기록인 185.29점보다 무려 40점 이상이 낮았다. 최종 총점 224.09점을 받은 발리예바는 안나 셰르바코바(255.95점), 알렉산드라 트루소바(251.73점·이상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사카모토 가오리(233.13점·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하며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세계 피겨계는 어린 선수들을 혹독한 훈련으로 소모하는 러시아의 육성 시스템에 주목한다. 발리예바의 코치이자 러시아 피겨의 ‘대모’인 예테리 투트베리제가 그 중심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트베리제가 키운 선수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화려한 점프기술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후 일찍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딴 율리야 리프니츠카야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알리나 자기토바, 은메달리스트인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는 한 차례 올림픽에 나선 뒤 조기 은퇴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기로 유명한 투트베리제는 어린 선수들에게 “내일은 없다. 반드시 오늘 성공해야 한다”고 주입식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극단적인 체중 조절도 어린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벼운 몸무게는 투트베리제 사단에서 고난도 점프 기술을 성공하기 위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7년 넘게 러시아피겨선수권에서 우승자를 계속 배출해 투트베리제에게 코칭을 받으려고 하는 선수는 줄을 섰을 정도다.
그런데 그녀가 키운 발리예바가 도핑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면서, 발리예바 또한 러시아 귀국 후 ‘일회용 종이컵’처럼 버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발리예바가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하더라도 투트베리제 사단 선수들, 즉 유망주들이 대거 포진해있어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잦은 부상과 혹독한 훈련, 그리고 성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로 악명 높은 투트베리제 사단이기에 일각에서는 발리예바의 도핑 스캔들에 투트베리제가 개입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발리예바 사태를 계기로 피겨계에서는 출전 선수의 나이 제한이 논란에 올랐다. 이번에 여자 피겨 싱글에 출전한 머라이어 벨(26·미국)은 17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연령 제한 기준 상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20대 중반’은 노장으로 분류되는데, 나이 제한 기준을 높인다면 선수들이 선수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 무리하게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발리예바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기준으로 ‘만 15세’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피겨 선수 중 가장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