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10년간 통합 항공사 일부 슬롯ㆍ운수권에 제한…"시너지 효과 약화ㆍ자율성 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했지만, 업계에서는 ‘반쪽짜리 합병’이라고 평가했다.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공정위가 향후 10년간 통합 항공사의 일부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에 제한을 두기로 하면서다. 항공업계는 양대 항공사 합병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정위는 22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승인하며 조건을 제시했다. 10년 동안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노선에 대해 운수권과 슬롯을 반납하는 ‘구조적 조치’와 운임인상을 제한하고 마일리지 제도를 유지하는 등의 ‘행태적 조치’가 세부 조건이다.
공정위 조치를 적용하면 통합 항공사는 기존 노선의 운항 횟수를 줄이고 다른 항공사에 운수권을 넘겨야 한다. 예컨대 인천~미국 로스앤젤레스 노선은 하루에 4회 운항하던 항공편을 절반으로 줄이고, 2회분은 타사에 이전해야 한다.
항공업계는 공정위 결정에 우려를 표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합병을 택했는데, 핵심 노선 운항에 제한을 두면 기대한 합병 효과가 저해되기 때문이다.
애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며 원가 절감을 통해 최대 4000억 원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핵심 노선 운수권과 슬롯을 반납하면 기존에 계획한 통합 효과가 반감된다. 대한항공은 공정위 측에 이 같은 우려를 반복해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통합 항공사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시너지를 창출해야 하는데, 공정위가 내건 조건으로 시너지 효과가 약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항공산업은 외생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10년이라는 기간과 이행감시위원회의 존재는 항공사의 경영 자율성을 떨어뜨리고 통합 시너지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합 항공사의 고용 유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양사 항공편 운항이 기존보다 줄어들면 일감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측이 통합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운항 축소는 장기적으로 고용 유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성권 아시아나항공 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담화문을 통해 “공정위 조치로 당사의 영업 규모가 결합 이전보다 축소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지만, 고용유지 원칙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 강조했다.
항공업계는 통합 항공사의 노선별 공급 좌석 수를 2019년 공급 좌석 수 미만으로 축소하지 못하게 한 공정위 조치에도 우려를 표했다. 항공 좌석은 저장이나 사후 판매가 불가해 최소 공급량을 설정하면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수요가 줄어들 때 공급이 과잉될 수 있고, 노선별 기종의 운영과 신규 도입에도 제약이 발생한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LCC(저비용항공사)는 이번 결정으로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내린 ‘알짜 노선’을 이전받을 수 있어서다. 다만, LCC는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항공기와 인력이 제한된 상황이라 기존에 주력하던 중ㆍ단거리 노선을 확대하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LCC가 단거리 알짜 노선을 먼저 확보하려 할 것이다. 현재 보유한 기종으로도 운항할 수 있고, 수요가 보장되기 때문”이라며 “이 경우 장거리 노선에는 외항사가 진입해 국내 항공 경쟁력이 약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대한항공은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지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기업결합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