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추진했던 대치2단지
"집값 상승엔 재건축이 낫다"
입장 선회하며 주민간에 대립
‘리모델링 안 합니다’, ‘실속 없는 리모델링 절대 반대’, ‘리모델링 감언이설 속고 나면 평생 후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유원서초아파트에 걸려있는 현수막 내용이다. 여야 모두 대선 공약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하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 내 주민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8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마친 아파트는 이달 기준 112개 단지, 9만1684가구다. 1월(94개 단지·6만9085가구)보다 32.7% 늘어난 수치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짓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를 유지하면서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재건축하려면 준공한 지 30년이 지나고 안전진단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이상에 안전진단 B·C등급을 받으면 추진할 수 있다.
이 중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안전진단은 1차 정밀 안전진단과 2차 적정성 검토로 나뉘는데, 지난해 서울 재건축 단지 14곳이 2차 안전진단을 신청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대선 유력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 카드를 꺼내 들면서 재건축 전성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정부의 규제 완화 이전에는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하던 재건축 단지들도 사업 추진을 재개하고 있다.
이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무한으로 풀어줄 수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풀어줄 수 있다”며 “층수, 용적률, 안전진단을 대폭 완화해서 인허가가 신속하게 나게 하고 사업 기간도 대폭 줄이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도 재건축 규제 완화를 제시했다. 윤 후보는 △역세권 민간 재건축 용적률 500%로 상향 조정 △30년 이상 공동주택 정밀 안전진단 면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대폭 완화 등을 내세웠다.
서울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선 사업 방식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조합 내부에서 재건축 사업으로 재추진해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는 매맷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데 리모델링 단지는 상대적으로 시세 차익이 적다는 게 리모델링 반대하는 주민들의 주장이다.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에선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올해 재건축 연한(준공 후 30년)을 채웠고 최근 수년간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크게 올라서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한 주민은 “재건축 시 예상되는 용적률은 250~270% 정도인데 리모델링 시 용적률 289%와 큰 차이가 없다”며 “재건축하는 게 집값 상승에도 유리하다”고 했다.
서초구 서초동 유원서초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입주민들은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낮은 데다 내력벽 철거 허용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리모델링 조합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는 입장이다. 리모델링 추진 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으며 공공기여 부담 의무도 재건축보다 적다는 주장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안전진단 면제, 재초환 완화 공약 등이 쏟아지면서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단지의 현실적인 상황 등을 고려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