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그런데 최근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혈액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학술지 ‘플로스 유전학’에 실렸다. 영국 국립보건연구원 등 공동연구팀은 O형인 사람이 코로나로 입원하거나 사망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발표했다. 다만 분석 방법의 한계로 A형과 B형, AB형 사이의 차이는 밝혀내지 못했다.
코로나19와 혈액형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이전에도 나왔다.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처음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뒤 환자들의 혈액형을 분석한 결과 A형이 38%로 인구 평균인 31%보다 꽤 많았다. 반면 O형은 25%로 인구 평균인 34%보다 꽤 적었다. B형과 AB형은 비슷했다.
혈액형이 특정 질병에 걸릴 위험성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꽤 된다. 겨울철 식중독의 주범인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성은 O형이 높고 B형이 낮다. 치명적인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혈전색전증이 일어날 가능성은 O형을 기준으로 했을 때 다른 혈액형들이 1.6배 더 높다. 이처럼 질병에 따라 유리하거나 불리한 혈액형이 다르다. 그런데 왜 다양한 질병에서 혈액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혈액형은 ABO유전자의 유형에 따라 결정된다. ABO유전자는 세포 표면의 단백질에 당분자를 붙이는 효소를 지정하는 데 세 가지 유형이 있다. A형과 B형은 붙이는 당분자가 다르고 O형은 고장 난 상태로 아무것도 붙이지 못한다. 그 결과 혈액형에 따라 적혈구뿐 아니라 다양한 세포에서 단백질의 당분자 구조가 다르다.
아마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A형 단백질에 더 잘 달라붙어 감염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고 증식이 활발해 중증화로 진행될 위험성도 큰 것으로 보인다. 반면 노로바이러스는 O형 단백질과 궁합이 더 잘 맞아 반대 패턴을 보인다. 한편 O형 단백질을 지닌 적혈구는 덩어리를 만드는 경향이 적어 혈전 발생 위험성은 낮지만 대신 지혈에는 약간 불리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 코로나19가 대유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병의 실체를 모르니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감염된 사람의 상당수가 죽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인구에서 O형의 비율은 늘어나고 A형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을까. 즉 질병이 혈액형 분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인종이나 지역에 따라 혈액형의 비율이 꽤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O형이 28%, A형이 32%, B형이 30%, AB형이 10%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를 들어 페루 인디언은 100% O형이고 북미 인디언인 블랙풋은 A형이 82%다. 수만 년 전 인류가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거쳐(당시에는 육지로 연결됐다) 북미와 남미로 퍼져나가며 현지 병원체와 만나 혈액형의 선택이 일어난 결과로 보인다.
일주일째 하루 20만~30만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O형이니 다행이다’ ‘A형이라 걱정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차이는 크지 않다. 코로나19 중증화 여부의 가장 큰 변수는 나이와 백신접종이다. 고령자나 어떤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설사 O형이더라도 이번 대유행이 지나갈 때까지 조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