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이후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숨을 죽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2030 남성들이 윤 당선인을 지지하면서 여가부 존재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계가 '공약 철폐'를 내걸면서 후폭풍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개편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30 남성들은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성 정책뿐 아니라 청소년과 가족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일을 도맡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초기, 피해자가 기자회견장에 나와 피해 사실을 호소했음에도 여가부가 침묵했다고 꼬집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한다는 취지로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강행하면서 청소년 프로게이머가 국제대회 중 셧다운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에 "김치녀는 혐오 발언이지만 김치남은 혐오발언이 아니다"는 내용을 담아 갈등을 촉발했다.
국민의힘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이재명 후보와 접전을 벌이던 윤 당선인은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2030 남성들은 즉각 반응했고, 결국 대권을 잡았다.
그간 '여가부 무용론'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대선 후보자가 직접 공약으로 내걸고 지지층을 결집한 사례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젠더 갈리치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비판이 거세지고 부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자 여가부는 정부서울청사 17층 현판 옆 홍보용 모니터 전원까지 껐다. 내부에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여가부를 '여성부'로 축소하고 보육ㆍ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려 했지만 업무가 늘자 재차 여성부로 넘긴 사례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가부의 축인 △여성정책 △가족 △청소년 중 하나만 떨어져 나가더라도 조직 기능이 저하되는 만큼 현행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여가부 관계자는 "진짜 폐지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며 "이전에 기능 이관을 시도하다 실패한 적이 있어서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늘 주장하듯 여가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서가 아니다"며 "다른 부처가 기존 사업들을 떠맡는 것보다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개편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여성계도 반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공약을 폐기하고 여가부 기능을 강화해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가부 폐지와 함께 '무고죄 처벌 강화' 공약 역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당선인은 여성과 소수자들이 모두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정책 비전보다는 오히려 혐오 선동, ‘젠더 갈등’이라는 퇴행적이고 허구적인 프레임을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 등에 상당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 조차 개편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는다. 향후 총선 등 선거를 고려하면 여성계 반발을 무릅쓰고 폐지를 단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TBS라디오에서 "젊은 여성들이 가졌을 소외감이나 배타적인 감정에 대해서 앞으로 굉장히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에서) 다 인식하고 있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당내에서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도 나왔다. 조은희 서울 서초갑 보궐선거 당선인은 전날 CBS라디오에서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저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통령 선거 공약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은 가볍게 하지 말아달라"고 응수했다.
정부조직법 개정도 쉽지 않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어 반대를 넘어설지 미지수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현실에서 윤 당선인 의지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젠더 갈라치기 비판이 나오고 지방선거나 총선 등을 고려하면 여가부 폐지를 강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약을 폐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내용을 조정해 지지자들이 만족할 만한 개편안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내에서도 의견이 달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