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논란 지속된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소비자들 “더 이상 미뤄선 안돼”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 여부를 결정할 마지막 관문인 생계형 적합업종 두 번째 심의위원회(심의위)가 오는 17일에 열린다. 첫 번째 심의위가 1월 14일에 개최된지 2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셈이다. 당시 심의위는 실태 조사 자료가 미흡해 판단을 미뤘고 한 차례 회의를 열어 실태조사 보완 결과와 중고차 관련 이해 관계자의 의견 등을 종합해 최종 결론을 낸다고 계획한 바 있다.
이에 소비자주권회의는 심의위 개최 일주일 전인 11일 ‘소비자가 본 자동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과 소비자 후생’ 토론회를 개최했다.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 변화를 위해 완성차 대기업의 시장 진출할 수 있게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에 따르면 소비자 80.5%가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통해 소비자가 보호받고, 선택권을 보장받기를 원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수입산 자동차 브랜드는 연식 5~6년 내의 인증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는데, 국내 완성차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입 제한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GM 등 미국의 통상문제(FTA, WTO 규정 위반 등)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중고차 매매가 신차 매매의 약 1.3배 이상 많이 거래되고 있지만, 중고차 시장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허위·미끼 매물, 성능상태 점검 불일치, 과도한 알선수수료 등 소비자피해사례가 만연하고 있는 점 △중고차 매매 이후 수리 및 교환·환불에 대한 시스템의 미정착 등을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완성차업체가 인증하는 중고차 거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재철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장은 “소비자기본법상 중고차량을 선택할 때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고, 거래상대방·구입장소·가격 및 거래조건 등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가 있음에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성숙 계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의 허위 기재나 고지 내용과 다른 중고차 판매로 소비자피해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부당한 영업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현대차 등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한 후 신차구매할인(보상판매) 등 마케팅 전략의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그동안 중기부와 심의위는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결정을 미루면서 중고차시장의 혼란과 소비자들의 피해만 가중시켰다”며 “중고차 시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해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중고차 소비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도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하는 열린 자세로 상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과 품목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다. 적합업종 지정은 일차적으로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실태조사를 거쳐 의견을 내리고, 이어 중기부 산하 심의위 심의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대기업은 5년간 해당 사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 2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고, 2019년 1월 지정 만료됨에 따라 같은 해 2월 중고차단체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다. 이후 3년간 논란이 지속했다.
중고차업계는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시 큰 타격을 우려하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했다. 반면, 완성차 대기업은 중고차 시장 선진화, 소비자 후생 개선, 수입차와의 형평성 등을 주장하며 중고차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그동안 중기부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법적 조치 이전에 중고차업계와 완성차업계가 상생하는 방안을 찾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다했다. 중기부는 양측과 수십 차례 만나서 중재 노력을 했지만, 논의의 진전은 없었고 법률에 따라 최종 판단을 심의위에 맡겼다.
한편, 완성차 업체 중 현대자동차는 7일 심의위 개최와 무관하게 중고차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신뢰 제고,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중고차사업 방향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향후 본격화할 중고차사업 비전과 사업방향을 공개하며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 함께 성장하면서 국내 중고차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