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기점으로 110여개 증권거래소서 타종
손병두 이사장 “늦어진 성평등 시계 되돌려야 할 때”
권춘택 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 “기업 내 성평등 중요성 알리는 계기로”
성평등을 위한 종소리가 마침내 한국에서도 울렸다. 한국거래소가 자본시장의 성평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링더벨’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했다.
한국거래소는 16일 서울 사옥에서 ‘KRX-UNGC 성평등을 위한 Ring the Bell(링더벨)’ 행사를 개최했다.
‘링더벨’은 유엔(UN)의 다섯 번째 지속가능발전목표(SDG)인 성평등 개선을 위해 꾸려진 타종 행사다. ‘성평등을 위한 종을 울리자’는 의미의 링더벨은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점으로 각국의 증권거래소에서 열린다.
링더벨 캠페인은 올해로 8회째를 맞이했지만, 한국거래소가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거래소도 ESG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링더벨에 동참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기업과 투자자를 잇는 자본시장 플랫폼으로서 성 다양성의 중요성과 확산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개회식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사 부담, 육아 부담이 여성의 몫으로 돌아갔다”며 “지금부터라도 일상회복과 함께 늦어진 성평등 시계를 다시 되돌려야 할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국제구호개발 옥스팜이 ‘다보스 어젠다 주간’에 맞춰 발표한 ‘죽음을 부르는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완전한 성 평등에 이르는 데 필요한 시간이 99년에서 135년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가 심화한 불평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경제 위기는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시대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미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성평등을 위한 ESG 투자가 ‘뉴노멀’이 됐다. 블랙록 등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들은 기업들에 적극적인 여성 임원의 발탁을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보다는 더디지만, 우리나라도 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분주하다.
올해 8월부터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사가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대다수의 이사 성별이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이사를 1명 이상은 무조건 선임해야 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상 기업 152개 중 절반이 넘는 85개사가 여성 임원 선임을 마쳤다.
그러나 한국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고질적 문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8일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유리천장 지수는 성별 임금 격차를 포함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기업 내 임원 비율 등을 토대로 산출하는 지수다.
특히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5%로 29개 조사 대상국 평균(13.5%)의 두 배를 웃돈다.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의 임금은 63만9000원에 그친다는 얘기다.
씨티그룹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낸 보고서는 기업 내 성 격차가 해소된다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3% 늘어나고, 4억 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권춘택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여성 리더십이 확보된 조직은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달성한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디고 있다”며 “링더벨 행사가 기업 내 성평등과 다양성, 포용성의 중요성을 시장에 알리는 시그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타종식에는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권춘택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회장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대사 △이정희 대한민국 여성 스타트업 포럼 의장 등이 참여했다.
이은경 UNGC 실장은 “전 세계 6300여 개사가 참여 중인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에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동참하고, 성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해 나갈 것을 요청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