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금리인상과 무시하기 어려운 침체 우려"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미국의 자신감, 경제 위기 시대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다. 미국 등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가 등 원자잿값이 급등하고 있고, 신흥국 등 성장동력이 뚝 떨어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여러 악재가 맞물리면서 한국 등 신흥국 경제에 짐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돈줄 조이기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실물 경기로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강도높은 긴축정책은 신흥국에 미치는 충격이 적잖다. 한국 경제에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와 같은 존재다. 미국의 작가이자 정책분석가인 미셸 부커 전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연례 회의인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예상하기 극히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black swan·검은 백조)과 대조된다.
IMF는 연준이 금리인상 가속페달을 밟으면 수요와 교역이 둔화하는 한편,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이 동시에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높아진 금리를 좇아 돈이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각국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긴축 속도는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금리 상승은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과 맞불려 금융 시스템을 흔들고,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동반될 가능성이 커 우려는 더 크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증시의 충격이다. 뉴욕 증시의 간판 지수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은 지난 60년 사이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기간 평균 2.1% 떨어졌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가격(수익률과 반대)은 1972~1982년 사이 연간 기준 9번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은 채권이 보유한 미래현금흐름의 구매력을 갉아먹는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확대는 달러화 강세를 유발해 신흥국 자금 유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신흥국의 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황유선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신흥국이 장기 저성장에 빠지면 세계경제 전체도 2~3% 대 의 저 성장이 굳어질 위험이 증가한다”면서 “이 경우 금리금리, 물가 외에 기대 수익률 등도 낮은 수준이 만성화되면서 세계 경제 전체가 일본화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커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신흥국 성장률은 2019년 3.7%에서 2020년 -2.1%로 위축된 후 지난해 기저효과로 6.4%로 반등했다. 신흥국 경제의 상대적인 부진은 △선진국 대비 느린 백신 보급에 따른 경제활동 회복 지연 △선진국 대비 통화·재정정책 등 경기부양 여력 부족 △중국 경기둔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미국의 금리인상 충격과 환율급등(원화가치 하락),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얼마나 잘 흡수하느냐에 따라 위험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곳곳이 위험신호다.
이미 시장금리는 오르고 있다. 16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268%까지 치솟았다. 연초만 해도 2%(1월 3일 1.855%) 아래에 머물렀다. 금리가 오르면 한국경제가 짊어져야할 부담도 커진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와 소비가 줄고,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통화 긴축속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것은 안전 선호를 높이고 초안전자산인 달러에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개방 경제(small open economy)’인 대한민국호의 교역조건도 잿빛이다.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입가격(21.9%)이 수출가격(13.6%)보다 더 크게 올라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6.8% 하락한 89.42를 기록했다. 10개월 연속 내림세다. 1단위를 수출한 대금으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의 양을 뜻하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100 이하라는 점은 수입품보다 수출품이 상대적으로 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입가격을 끌어올렸다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교역조건 악화는 연쇄적인 경제위기 반응의 출발점이다.
이에 따라 외국에 지급하기 위한 외환 수요가 크게 증가하게 되고 이는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으로 직결된다. 지난 16일 달러당 원화 가격은 1235.70까지 떨어졌다. (환율상승) ‘빅 피겨(큰 자릿수)’인 1300원대에 재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완화가치가 하락하면 증시에서도 외국인은 발을 빼게 된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5조6626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 중 4조9991억 원 규모의 글로벌 자금이 이달에 빠져나갔다.
부동산시장도 거품 붕괴론이 고개를 든다. 서울 강북, 수도권 외곽뿐 아니라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몰리던 서울 강남권 집값마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내내 급등한 집값이 2007년 하락세로 돌아선 패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내놓은 2월 분양경기실사지수(HSSI) 자료에 따르면 전국 HSSI 전망치는 71.5로 전월 대비 4.7포인트 하락했다. 2020년 9월(60.8) 이후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째 내림세다.
16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518.76포인트(1.55%) 오른 34,063.1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95.41포인트(2.24%) 뛴 4,357.8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487.93포인트(3.77%) 급등한 13,436.55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국내증시도 안도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KTB투자증권이 과거 유사 테이퍼링 시점을 기준으로 미 증시 추이를 살펴본 결과, 1·2·3차 테이퍼링 종료 관찰구간 3개년 동안 우상향 곡선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1·2·3차 테이퍼링 시점 기준(100포인트 기준) 직전 1년을 포함한 전체 3년 기간(이하 전체 3년) 동안, 주식시장 퍼포먼스 평균값은 105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1차 테이퍼링 종료 후 2년 동안의 주식시장 수익률은 -3.6%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전 1년을 포함한 전체 3년 기간으로 넓혀보면 수익률은 17.7%로 뛰었다. 2차 양적 완화(QE2) 직후 2년과 전체 3년 수익률은 각각 4.8%, 15.0%를 기록했으며 3차 양적완화 역시 각각 6.0%, 8.5%로 상승 추세가 지속됐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금융시장은 이번 FOMC를 불확실성 완화로 해석하는 분위기다”면서 “FOMC 선언문과 수정 경제전망이 발표된 직후 주식시장이 상승폭을 반납하고, 금리와 달러화가 급등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자회견을 거치면서 금리와 달러화가 반락하고 증시 상승폭이 재차 확대됐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자체는 악재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다. 뿐 아니라, 미국 경제가 코로나 19 이전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그러나 이번 경기 여건은 과거 금리인상 국면과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이 늘 금융위기 또는 침체를 야기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70~80년대처럼 물가 상승률이 높고, 금리인상 속도가 가파를 때 경기가 침체에 진입하는 경우가 90년대 이후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약세장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작다. 주가 조정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2023년까지 이어지는 금리인상과 성장 둔화는 주가 상단 기대를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